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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세상에는 절망 밖에 없죠···?" Artistic

요즘 들어서 많이 나약해진 것인지 안 좋은 뉴스들이 크게 다가옵니다. 뭐 그런 사건들은 예전에도 있었고 또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지만, 그래도 참 마음이 아프네요.

"여수 백야대교 밑 30대 여성 변사체...피살로 확인(종합)"

요약하자면 사채업자들이 피해자(30대 중반 여성) 이름으로 4억 원 정도의 보험을 들어놨고, 수면제를 먹여서 재운 뒤 차량에서 목을 졸라 살해 후 시신을 유기한 사건입니다. 다름 아닌 돈 때문에 저렇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새삼스럽지는 않은 일이지만, 어쨌든 참 마음이 아프네요. 죽은 분의 명복을 빕니다.

얼마 전엔 전남 순천(?)에서 납치 사건이 있었죠. 20대 초중반 남성 두 명이 아는 지인의 여자친구를 납치한 후 현금 2,000만 원을 훔쳤는데, 한 명은 잡히고 한 명은 인근 공원 같은 곳에서 자살했던... 수배자였기 때문에 자살한 그 친구의 사진도 떴었는데, 생긴 건 참 멀쩡하더라구요. 그 얼굴에 전과도 있었다던데, 어쨌든 본인이 납치는 같이 했지만 현금을 훔치진 않았다는 유서를 쇼핑백 겉에 적은 후 자살한 것 같았습니다. 납치 당했던 여성분의 경우 자살한 범인의 고등학교 동창의 여자친구였다고 하더라구요. 유서에는 친구한테 미안하다는 내용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아니, 혼자 사는 원룸에 현금 2,000만 원이 있었다는 점에서 사건의 총체적 진실이 아직 명확히 밝혀진 건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은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 때문에 그렇지, 크게 미스테리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조금 이상한 느낌을 가진 건 다른 부분에서였는데요.

자살한 정 씨의 수배 사진은 증명 사진 같았습니다. 눈을 아주 동그랗게 뜨고 있더라구요. 보통 취업 사진 준비할 때 그렇게 찍곤 하죠. 외모적으로 좀 더 나아보이려고 눈을 크게 뜨는 그런 표정 있잖아요? 범인도 그런 표정으로 증명 사진을 찍었더라구요. 그걸 보고 뭐랄까, 참, 악의 평범성이랄까, 그런 것도 느껴졌습니다. '그런 인간도 증명 사진은 잘 나오게 찍고 싶어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죠.

제목에 적힌 "어르신, 세상에는 절망 밖에 없죠...?"(정확하진 않겠지만...) 라는 말은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세상이 멸망(?)한 후 여기 저기를 떠돌던 '오쵸'는 바이러스 백신 때문에 한 마을의 사람들 모두를 죽여버린 어떤 남자를 의도치 않게 구해주게 되고, 나중에 자신이 구한 그 남자가 마을의 모든 사람들을 죽여버린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제압하려 하죠. 그 남자는 '오쵸'가 자신을 구해주었기 때문에, 오쵸가 잠들어 있을 때 몰래 바이러스 백신을 놓습니다(참고로, 이 백신은 아주 귀합니다). 

어쨌든 오쵸가 그 남자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그 남자는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합니다. 사실 그 남자의 가족은 바이러스 백신을 노리고 쳐들어온 사람들 때문에 모두 살해당했었고, 따라서 자신도 복수심 때문에 마을 사람들을 다 죽인 것이었죠(약육강식의 논리겠네요). 어쨌든 오쵸는 그 사람을 구해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남자는 자신이 자신의 딸과 비슷한 나이였던 3살 짜리 여자 아이도 죽였었다며 "어르신, 세상에는 절망 밖에 없죠...?" 라고 물은 후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져 사망합니다. '오쵸'는 끝도 없는 절망감에 빠지게 되죠.

이 만화는 제가 좋아하는 다른 작품들과 비슷한 주제를 갖고 있습니다. 결코 희망을 쉽게 얘기하지 않죠. 주인공 '켄지'에게 누군가 '언젠가 록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겠죠?' 라고 묻자, '켄지'는 그런 건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젊은 시절 누구보다도 록의 힘을 믿었던 '켄지'는 그런 건 헛된 희망임을 깨닫게 된 것이죠. '세계의 멸망' 이후 켄지는 순진함을 버리고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직시의 가장 큰 방법은 바로 속죄를 통한 자기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는 것이었죠. <20세기 소년>에는 자신의 과거와 화해한 후 앞으로 묵직하게 걸어가는 인간들을 묘사하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어린 시절의 죄의식에서 벗어나는 거죠.

'서부의 세익스피어'라고 불리는 코맥 맥카시의 <로드>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아포칼립스' 이후를 살아가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쓴 작품이죠. 이 작품의 광고가 기억이 납니다.'320페이지의 절망, 그리고 단 한 줄의 희망' 뭐 이랬던 것 같네요. 우리네 삶에 희망이란 건 겨우 이 정도 비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이라서 그 나마 한 줄이라도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프랑스의 작가 알베르 까뮈는 삶은 본질적으로 살아갈 가치가 없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살아갈 가치가 생긴다고 말했죠. 자살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 그게 인간의 운명인데, 그렇기 때문에 그 운명에 반항하고 저항하는 게 존재할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른바 '반항의 철학'인 것이죠. 삶에 필연적인 '부조리'를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지만, 그래도 그것과 싸우다(견디다가) 죽는 게 의미있는 삶이라는 말이었습니다.

<20세기 소년>에서는 희망을 쉽게 말하지 않습니다. 영웅을 쉽게 말하지도 않습니다('켄지'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자신은 영웅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좋아질 수 있다는 순진한 낙관론을 펼치지도 않습니다. 세상은 절망으로 가득하지만, 다만, 그래도 인간은 계속해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비록 행복하지 않더라도 말이죠. <20세기 소년>, 애매모호한 내용과 복잡한 구성으로 인해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언급한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아주 좋았던 작품인 것 같습니다. 안 보신 분들께도 두세 번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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