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힐링, 자기계발서, 그리고 인문학... trifles

중학교 3학년 때 우리 반 담임은 국어 선생님이셨다. 1~2학년 때 받은 교지에는 언제나 그 선생님의 시가 쓰여 있었다. 어릴 때였지만 그가 쓴 문장은 참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쉽지 않은 시였는데,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선생님은 교지에 왜 그런 걸 썼던 걸까. 그리 밝지 않은 주제의 시였던 것 같다.

그 선생님이 담임이 되었을 때, 내가 그 선생님의 시를 읽었던 것은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어쨌든 그 선생님의 성격은 과히 괴팍했다. 자율학습 시간에 떠들고 있으면 갑자기 들이닥치며 '대가리 박아!' 라고 외쳤고, 그럴 때면 우리 반 친구들은 모두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 머리를 박았다. 그 선생님은 구둣발로 아이들의 책상 위를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아이들의 엉덩이를 갈겨댔다. 또 항상 자신의 양복이 이태리 수제품이라며 흡족한 표정을 짓곤 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같은 재단 고등학교로 보내기 위해 특별 상담을 하기도 했다(아마 재단 차원의 지시였을 것이다). 그런 그는 그런 수준의 시를 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물론 <Dead Poet's Society>의 키팅 선생님 같이 자애롭지는 않았지만...

대학교에서 소위 '문사철' 중 하나를 전공했다. 다들 복수전공이니, 전과니 떠들 때 나는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그런 대안을 선택하는 게 '힐링'에 불과하다고 봤던 것 같다. 모든 인간은 괴롭게 태어나고 괴롭게 죽게 되어 있는데, 그 과정 속에서 필연적인 고통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에 불과하다고 본 것이다. 내가 되지도 않는 똥고집으로 문사철 중 하나만 공부했든, 혹은 다른 친구들처럼 경영학이니 경제학이니 하는 것들을 배웠든 말든 나는 필연적으로 불안했을 것이다. 경영학이니 경제학이니를 공부하면서 얻을 수 있는 불안감의 해소라는 것은 얼마나 덧 없나. 그래서, 다들 행복하데? 대학교를 나오지 않은 내 삼촌은 '대학만 나왔더라면...' 이런 말을 하던데, 왜 우리 대부분은 대학을 다 나오지만 그래도 행복하지 못할까?

전공 공부를 하며 필요 이상으로 소위 인문학 서적이란 것들을 읽었더랬다. 딱히 답을 찾고 싶어 읽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재미있었다. 내가 파악한 모든 인문학 서적은 뭔가 슬프다. 마지막엔 다들 죽는다. 아무도 행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는 쓸쓸한 말년을 보냈고, 들뢰즈인가, 데리다인가 하는 철학자는 부인을 죽이고 자살을 했다고 한다.

나는 솔직히 말하면 내가 자기계발서를 읽든 혹은 인문학 서적을 읽든 그저 그런 인생을 살아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때문에 힐링 혹은 자기계발서를 부정하는 논리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인문학 서적을 읽는다고 해서 내 삶이 윤택해질 것이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며칠 전 광화문 영풍 문고에서 가장 잘 팔리는 10권 중에 5권 정도가 자기계발서인 것을 본 적이 있다. 예전의 나 같으면 혹시라도 '뭔가 잘못된거야'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며칠 전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자기계발서가 유행을 해서 사람들이 많이 읽든, 아니면 만약에 인문학이 (요즘 식으로 말고) 기적적으로 부흥해서 많은 이들이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는다고 해서 난 그들의 인생이 크게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문학 공부를 한 사람들도 그냥 살고, 자기계발서를 읽은 사람들도 왠만하면 그냥 산다. 그리고 아무런 책도 읽지 않은, 까막눈인 내 어머니도 그냥 산다.

사람들이 그걸 원한다면 그걸 했으면 한다. 자기가 '자기'계발서를 읽는데 거기서 효용이 발생하든 말든 타인이 신경 쓸 문제가 아니다. 자기계발서를 읽으면 괴물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인문학 서적을 읽는다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더 좋은 인생을 산다는 보장도 없다. 아무리 많은 시를 읽고 어떤 고양을 경험해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자기가 그 시대의 선생님이었다면 애들을 때렸다. 설마 울면서 때렸을까? 단지 직업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하면 그나마 잘 봐주는 것일게다. 물론 이런 예는 단지 하나의 예에 불과할 뿐일 것이다.

학부 때 같은 학문을 전공한 친구들과 그런 종류의 토론을 한 적이 꽤 있었다. 그 친구들은 인문학은 존재하며, 이 사회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쎄, 난 인문학의 범주가 뭔지도 모르겠고, 이 '사회'에 '필요'한 인문학은 그 자체로 인문학이 될 수가 없다고 보았다. <쉽게 읽는 논어> 이런 책들은 대체 인문학 서적인가, 아니면 자기계발서인가? 그렇다면, <슬램덩크> 같은 만화는 어떤가? 이건 왜 인문학 서적으로 분류되지 않는가? 그렇게 '좋은' 메시지를 갖고 있는데 말이다. 솔직히 모르겠다. 그리고, 알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자기계발서니 인문학 서적이니 그런 건 애초부터 하나도 안 중요한 거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그토록 읽어댔던 '인문학 서적'들은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을까? 그리고 내가 기피했던 자기계발서들은 과연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을까? '인문학 서적'을 많이 읽은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일까? 특별할 것 없이 살고 있다.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은 사람들조차 어려워 하는 삶의 문제는 나 역시 풀 수 없다. 한 때는 그런 허세를 부리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관뒀다. 인문학을 공부하거나, 혹은 인문학 서적을 많이 읽은 사람들의 자살률이라든지, 어떤 통계가 잡히지 않는다. 삶을 크게 변화시킨다는 증거가 없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지금 읽어볼 필요가 있을까? 내가 읽어본 바, 전공자 말고는 그 '인문학 고전'을 읽을 이유가 없어 보였다.

인문학 서적을 탐독함으로서 자신에게 도움(다른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지만...)이 되었다는 사람이 존재하는지 궁금해진다. 내가 본 바로는 다들 자기 만족일 뿐이었다. 자기계발서를 읽는 다수의 사람들에게서도 똑같이 느껴지는 그것 말이다. 그래서인지, 누군가 인문학은 '대답하지 않고, 질문하는 것' 이라고 했다. 탁월한 대답이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질문하고 싶다. 인문학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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