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요즘 나는 이래요 trifles

날씨가 아주 추워졌지만, 요샌 집에 있는 일이 많기 때문에 그닥 와닿지는 않는다. 보일러 스위치에 표시된 온도는 올라갈 생각을 안 하지만, 부모님께서 보내주신 전기장판 때문인지, 아니면 항상 입고 있는 깔깔이 때문인지 그닥 춥지는 않다. 오늘 아침이 영하 13도였다는데, 나는 보일러를 틀고 전기장판을 떼웠기 때문인지 그닥 춥지는 않았다. 어제 먹은 통닭 때문에 어제 밤새 배가 아팠다. 설사를 여러 번 했다. 어제 새벽 6시쯤에 잠에 들었고, 아침 8시 정도까지 두 번 정도 깨면서 화장실에 갔다. 배가 아팠기 때문이다. 그곳이 좀 아팠었다. 낮 12시쯤에 기상해서 슈퍼마리오3 등을 하면서 시간을 떼웠다. 그저께 누나가 사놓은 어묵과 햄과 유통기한이 지난 송이버섯에 간장을 넣고 볶아서 반찬을 만들었는데, 그닥 맛있지는 않았다. <나는 꼼수다>를 들으며 잠을 청했었는데, 의외로 깊은 잠에 들었었던 건지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아침에 여러 번 깼던 이유는, 오로지 배가 아팠기 때문인 것이다.

요즘들어 자살을 여러 번 생각했었다. 실행에 옮길 생각은 해본 적 없지만, 뭐 하더라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나는 요즘 사람들에 비해 자살에 대해 관대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이방인>의 뫼르소의 행동도 결국은 자살이고, '젊은 베르테르'도 그 시덥잖은 사랑 때문에 권총으로 자살을 했다. 그게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인 것이다. 말하자면, 경계가 연하다고 할까? 삶에 회의를 느낄 때, 누군가는 '그래도 그건...' 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아닌 것이다. 그래서 '연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 이야기는 군 제대 이후 나와 오랜 시간 가장 가깝게 지내는 후배 이지현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 친구의 성격은 나약하다. 그래서 그런지 그것에 대한 거부감이 큰 것 같다. 그것을 하면 안 되는 이유는 제시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그 친구가 무식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남들 보다 똑똑한 편이지. 다만, 그것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것이다. 착한 거다. 그래, 그거면 된 거다.

오늘 저녁에 SBS 8시 뉴스가 끝나고 그 다음에 하는 어떤 드라마들 들으며 슈퍼마리오3를 하고 있었다. 제목이 뭔지는 모르겠다. 오늘 내용은 어떤 이야기 주류의 가족 중 아들 한 명의 죽음이었다. 그 아들의 엄마와 할머니의 연기는 참으로 슬펐다. 엄마 역은 영화 <애자>에 나오는 그 엄마였고, 할머니 역은 옛날 최수종과 김희애가 나왔던 드라마의 엄마 역할이었던 '정' 뭐시기 할머니였다. 그 둘의 가슴치는 연기는 눈물겨웠다. 그대는, 눈물 겹다.

하여 난 엄마를 생각했다. 부모님이 아니라, 엄마를 생각했다.

내가 죽으면... 그것도 자살이라면, 과연 내 엄마는 어떻게 할까.

엄마는 굉장히 다중적인 사람이다. 어떤 때는 엄청나게 강인하고, 어떤 때는 엄청나게 약하다. 기준은 간단하다. 아마 그녀가 그런 기준을 두고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아마 많은 어머니들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나의 엄마는 세상 다른 엄마들보다 좀 더 확장된 그런 캐릭터다.

내가 만약 자살을 한다면, 엄마도 자살할 것 같다. 아니면, 아마 여생을 폐인 같이 보낼 것이다. 폐인 같이 보내진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워낙 강인한 사람, 아니면 자신이 강인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 그래도 오롯이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엄마를 예전부터 알던 사람, 나의 형제는 물론이거니와, 혁이나, 찬우나, 외삼촌, 외숙모, 이모, 작은 외삼촌 등, 외가 쪽 친척들이라면 알게 될 것이다. 그 때는 이미 많은 것이 달라져버렸다는 것을 말이다. 결코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그런 변화 말이다.

내 생각에 아빠는 나와 비슷한 인간이다. 나는 먼 훗날 내 자식이 그런 선택을 하더라도, 아마 내가 생각하는 엄마의 그 마음의 상태와는 다를 것 같다. 비교할 수 없는 게 있다. 내 아빠가 어렸을 적 자신의 엄마를 잃었던 상처는 자식인 내가, 어린 시절의 내가 올곳이 느껴질 만큼 절절했다. 아빠가 나한테 그 말을 해줄 당시 아빠는 40이 넘었었는데 말이다. 어미는 아비와 다르다. 김대중은 노무현을 잃고 자신의 절반이 무너졌다고 말했지만, 또 그것이 엄청나게 말도 안될 정도로 강력한 레토릭이라는 것도 알지만, 자식을 잃으면 어미는 모든 것을 잃는 법이다. 모든 것이라고 표현할 것까지 있겠나, 99%라고 해두자.

하여 난 지금 이 순간 엄마를 생각한다. 물론 아빠도 생각한다. 나는 아빠가 멋적게 웃는 얼굴과, 엄마의 그 우는 얼굴이 떠오른다. 그것만 생각해도 가슴이 너무 아프다. 너무 너무 아파서, 어떻게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다만 내가 다짐하는 것, 그리고 나에게 의식이라는 것이 생기면서 이제껏 생각해왔던 것, 절대로 내 부모보다 먼저 죽지는 말자, 라는 게 있다. 까뮈가 말했듯 인생은 애초부터 부조리한 것이라 자살을 하지 않을 이유를 찾는 게 더 힘든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렇게 버텨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아무리 죽고 싶어도, 바로 말하면, 살고 싶은 마음이 없지만, 그 힘든 인생을 살아왔던 내 부모님들을 위해서라도 버티고 싶다. 조금씩 더 버텨가고 싶다. 투쟁하고 싶다. 삶에 대해서 말이다. 부질 없겠지만, 그래도 내 부모님이 죽기 전까진 어떻게든 버텨내고 싶을 뿐이다.

만약 내가 자살을 한다면, 이 블로그 주소를 내 큰 누나에게 알려줄 계획이다. 그녀는 나에 대해, 또 내가 쓴 글에 대해 알 자격이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그러고 보니 누나들한테도 미안하다. 만약 언젠가 내가 유서를 쓴다면, 큰 누나와 작은 누나에게 고마웠다고, 그리고 미안했다고 말하고 싶다. 큰 누나와 작은 누나 모두. 둘에게 각자 다른 이유로... 누나들도 나의 부모다. 그렇게 생각하니 부모님 뿐만 아니라 누나들보다도 더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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