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우라사와 나오키 인터뷰 Artistic



우라사와 나오키. 1983년 데뷔한 이래 여러 히트작을 그려온 일본의 국민적 만화가. 헤이세이 문화사에 남을 대걸작 『20세기 소년』이 실사 영화화되고, 고단샤 잡지에서는 첫 작품이 되는 신작 『BILLY BAT』의 정보가 Yahoo!의 톱뉴스에 오르는 등, 지금은 말 그대로 "문화 아이콘"이다. 그러나 그 압도적인 판매량에 비하면 그나 그의 작품은 정당한 평가를 엊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작품을 철저히 메이저한 형태로 대중에게 전달한다는 자세를 관철한다 - 우라사와의 만화가 인생 최대의 테제는 데뷔 시절부터 현재까지 전혀 흔들림 없이 이어져 왔음을 이 인터뷰를 읽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초지일관된 자세는 너무나도 경이적이다. 테즈카 오사무와 밥 딜런, 만화와 음악,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초연히, 또 때로는 뜨겁게 말하는 그 표정은, 그가 만들어낸 캐릭터들을 연상케 하듯 다양하게 변화한다. 작품과 마찬가지로 우라사와 나오키 본인도 재미있다. 사람으로서 너무나 재미있는 것이다.

본지는 지금까지 다망한 우라사와에게 수 차례 인터뷰를 신청해왔다. 그리고 이번에 우라사와의 맹우이자 지난 달 발매된 그의 첫 앨범 『반세기의 남자』의 프로듀서이기도 한 와쿠이 코지의 발안과 협력으로 염원했던 기회가 드디어 찾아왔다. 이것은 우라사와 나오키의 "이형(異形)"으로서의 대단함을 파헤치는, 총 4시간에 이른 인터뷰이다.



- 먼저 막 시작된 신작 『BILLY BAT』(고단샤의 「주간 모닝」 연재)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쭉 쇼가쿠칸의 잡지에서 그려오신 우라사와 선생님이 고단샤 잡지에서 연재를 시작한 건, 세간에선 Yahoo!의 톱뉴스에 소개될 정도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번 신작은 어떤 흐름으로 시작된 건가요?

우라사와: 아뇨, 아뇨. 별로 기대하실만한 충격적인 사실 같은 건 없습니다(웃음). 2001년에 『20세기 소년』이 고단샤 만화상을 받아서요. 출판사의 틀을 넘어 상을 받는 일은 잘 없죠. 그 때 「다음 연재는 고단샤에서」하는 이야기가 있어, 「모닝」의 담당 편집장과 쭉 의논해왔습니다.

- 『20세기 소년』 내에 쇼와 시절의 프로레슬링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오죠. 우라사와 선생님의 고단샤 첫 연재 소식을 알았을 때, 옛날 신일본 프로레슬링과 전일본 프로레슬링 사이에 벌어졌던 유력 외국인 프로레슬러 빼가기 싸움이 생각났었습니다(웃음). 대체 이게 어떻게 된거지!? 하고 조금 두근두근 했죠.

: (웃음) 아쉽게도 그런 화려한 내막은 없습니다.

- 하지만 『BILLY BAT』은 우라사와 선생님의 지금까지의 연재 작품 가운데 가장 화려하게 튀는 방식으로 시작된 것 같은데요. 1화가 느닷없이 「작품 속 작품」인 아메리칸 코믹이고, 제3화에선 주인공이 미국에서 전후 일본의 GHQ에 가서 시모야마 사건의 시모야마 총재를 만납니다. 「뭐가 시작된거지...?」하고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요소가 가득 넘치고 있죠.

: 만나는 사람마다 「저기, 그 뒤에 어떻게 돼?」라든가 「머릿속이 그 이야기에 대한 망상으로 가득합니다.」라는 말을 듣습니다. 기쁘죠, 만화가로서 대단히 고마운 반응입니다. 어쨌든 독자들을 두근거리게 만들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라면 24페이지 올 컬러라도 할 겁니다. 힘들지만요(웃음).


그림을 그리는 건 혼자서 할 수 있다

- 지금 말씀도 그렇습니다만, 우라사와 선생님은 만화라는 것에 대해 어딘가 객관적인 시점을 갖고 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 원래 만화가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니까요. 취업 활동으로 쇼가쿠칸에 지원해, 면접보러 가는 김에 원고를 가져갔더니 어쩌다 만화가가 된 게 제 경력의 시작이니까요. 하지만 가난하게 살고 싶진 않았고(웃음), 일단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렇다고 혼도 팔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직업으로서 어디서 균형을 맞출지 생각하지 않습니까. 물론 처음 인쇄물이 되어 잡지에 실렸을 때도 기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꿈이 실현되었다!」는 느낌은 솔직히 없었습니다. ...테즈카 오사무 선생님의 『양지의 나무』랑 나란히 제 만화가 실렸을 때는 역시 「대단하다!」 싶었지만요. 제 경우, 단순히 그림을 잘 그렸던 것 뿐입니다. 기분 나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요. 그래서 만화를 생업으로 삼을 때, 「그림을 잘 그리는 걸 어떻게 이용할까」생각하면서 지금까지 해온 셈입니다.

- 처음부터 "프로듀서 우라사와 나오키"라는 시작을 갖고 있었다는 건가요?

: 그런 느낌에 가깝겠죠. 그림에 관해서는 어릴 때부터 대단히 민감했으니까요. 예를 들어 초등학생 때, 애니메이션판 『거인의 별』을 보다보면 4, 5팀이 작화를 맡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겁니다. 그래서 「로테이션상으로 치면 다음 주는 그 팀의 작화구나. 다음 주는 좋은 장면인데 그 팀으로 괜찮을까?」하고 걱정하는 재수없는 애였죠(웃음). 그 밖에도 『사무라이 자이언츠』와 『알프스 소녀 하이디』는 같은 애니메이터가 그리고 있다는 걸 척 보고 알았습니다. 「서로 다른 애니메이션 회사가 만들었는데 왜 같은 사람들이 그린건지, 어릴 때 몸시 궁금했다」고 스튜디오 지브리의 스즈키 토시오씨한테 얼마 전에 만났을 때 이야기하니까 놀라더군요. 뭐 그렇게 크레딧을 보거나 조사하다보니 미야자키 하야오, 타카하타 이사오, 오오츠카 야스오 같은 이름이나, 아라키 신고라는 뛰어난 애니메이터를 어느새 기억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 그럼 우라사와 선생님이 생각하는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중 최고 걸작은 무엇입니까?

: 만화를 애니메이션화한 것 말이죠... 어려운데... 『왕근성 개구리』 같은 걸 좋아했죠. 캐릭터도 좋고, 배경도 좋고. 그리고 역시 『루팡 Ⅲ세』죠. 그 폭발 씬은 혁명적이었습니다.

-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 초등학생은 장래 그림을 그리는 것 이외의 인생을 선택할 수 없었을 것 같은데(웃음), 그림의 재능을 키우기 위해 미대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습니까?

: 전혀 없었습니다. 안 배워도 그릴 수 있었으니까요(웃음). 그리고 그림 그리는 사람끼리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하나 싶었고요(웃음).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든가 밴드를 한다든가 하면 사람이 필요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건 혼자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학에선 혼자서는 절대로 공부하지 않을 분야다 싶어 경제학과에 들어갔죠.

- 그럼 우라사와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직업은 무엇입니까?

: 글쎄요... 실제로 쇼가쿠칸의 시험을 쳤으니까, 출판사에 취직히 편집자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었나요. 하지만 분명 그냥 영업이든 뭐든 하겠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 지금도 영업사원으로 외근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 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지금도 불가사의합니다.


나는 『20세기 소년』의 켄지가 아니다

- 이번 인터뷰에서 여쭤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우라사와 나오키는 결국 뭐가 되고 싶었는가?」인데요. 대학시절에 밴드를 했었던 건 유명한 이야긴데, 가수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겁니까?

: 대학 선배 중에 더 스트리트 슬라이더즈의 멤버가 있어서 그들을 가까이서 보다 보니, 제가 프로 가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죠. 그들의 열정은 보통이 아니었고, 걸출한 카리스마성도 있었으니까요.

- 하지만 우라사와 선생님은 옛날 토키와장 사람들처럼 그림이란 장기를 살려 「나는 만화가가 되겠다!」는 명확한 의지는 없었고, 그렇다고 「돈을 버는 수단」으로써 만화를 택한 것도 아니죠. 만화가라는 직업, 만화에 대한 자세 자체가, 우라사와 나오키라는 작가를 말하는데 있어서 중요하다고 봅니다.

: 그렇군요. 확실히 지금 말씀은 좋은 지적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어릴 때부터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건 촌스럽다」고 생각했었으니까요. 가수가 되고 싶다는 것도 「어린애도 아니니까」라는 식으로 생각했고요... 그래서 현재의 저는 초등학생 때랑 별로 다를 게 없습니다.

- 반대로 말하면, 현재로 이어지는 자아가 어릴 때부터 이미 있었기에 만화가가 된 지금의 자신에 대해서도 모순을 느끼지 않는다는 겁니까?

: 네, 그렇다고 봅니다. 그리고 전 원래 열광하질 못해요. 그래서 저는 결코 『20세기 소년』의 켄지가 아닙니다. 저는 켄지만큼 열광하진 못하는 소년이었으니까요. 만약 제가 켄지 같은 사람이었으면 『20세기 소년』은 그리지 않았을 겁니다.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없으니까요.

- 그럼 되고 싶지 않았던 직업은 있었습니까?

: 으음, 「창피하게 생각하며 매일 아침 정각에 전철을 타고 출근하는 건 옳은 것인가?」라고 자문자답하는 글을 학창시절에 쓴 기억이 있습니다만... 하지만 최근에 안 건데, 이게 전부는 아니지만, 왜 만화가나 가수를 목표로 하지 않았냐면, 제가 좋아하는 만화 작품이나 음악이 모두 인기가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웃음).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 분명 안 팔린다, 가난하게 산다(웃음), 그런 생각이 들면 브레이크가 걸리죠, 보통. 그게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봅니다.

- 그렇군요. 그런 자질이야말로 오오토모 카츠히로나 오오모토의 영향을 받은 70~80년대의 만화 뉴웨이브가 서서히 저물어간 대신, 우라사와 작품이 크게 성공한 이유겠죠.

: 아뇨, 그건 자질이라기보다, 그런 흐름과 멀어진 이유는 명확히 있습니다. 저도 오오토모 카츠히로씨에게는 인생에서 몇 안되는 열광을 체험했죠. 그림에도 대단한 영향을 받았고요. 마침 제가 만화가로 데뷔한 시기였는데, 그 때의 오오토모 붐은 지금 설명해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을만큼 열광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키치죠지의 그의 작업실에 가서 「제자로 받아주십시오」라고 했더라도 이상할 게 없었죠. 하지만 그러지 않았고, 오히려 거리를 두고 쭉 진행과정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 그건 왜입니까?

: 으음... 열광했었지만, 동시에 오오토모씨 같은 방향서을 파고들어 가면 일종의 막다른 길이 기다리고 있을 듯한 느낌이 들었달까요... 하지만 오오토모 작품에 열광했던 사람들은 분명, 그 막다른 길로 들어가는 것조차 쾌감으로 삼았었지 않나 싶습니다. 매니아들은 막다른 길을 매우 좋아하니까요. 그런 「닫혀있는 쾌감」에 대해 거기에 진정한 행복은 있는가? 하는 식으로 저는 조금 거리를 두는 버릇이 있는 거겠죠.

- 그렇다고 해서 열광의 소용돌이로부터 거리를 두는 건 의식적인 전략인 겁니까?

: 아뇨, 의식적이라기보다 반사적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간에는 저를 전략가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로서는 순수하게 수중의 원고를 어떻게 제대로 그릴 것인지를 날마다 반복할 뿐이죠. 세간에서 말하는 「성공」 같은 게 아니라, 지금 그리고 있는 작품이 제게 있어서 걸작이면 저한테는 그게 「성공」인 겁니다.

- 하지만 본인이 뭐라 말하든, 세상은 「성공의 상징」으로 우라사와 나오키라는 작가를 보고 있는 것도 사실이죠.

: 거기에 세상 사람들의 오해가 있다고 봅니다...


웃을 수 있을 때가 좋은 때

- 우라사와 선생님은 어떤 중학 시절을 보냈습니까?

: 저는 육상부에 들었었습니다. 매일 그냥 묵묵히 달렸었죠. ...최근 느낀건데, 야구부나 축구부, 농구부 같은 경우는 다들 「시합」을 하고 싶어서 들죠? 하지만 육상부는 훈련의 성과를 「기록회」에서 테스트해 볼 뿐입니다. 그래서 「내가 왜 그 때 계속 달렸을까」하는 생각이 최근 문득 들었죠. 힘들기만 하고 전혀 즐겁지 않았거든요(웃음).

- 왜 야구부나 축구부에 안 들었던 겁니까?

: 팀플레이가 싫었기 때문 아닐까요. 신경쓰는 게 귀찮달까. 지금은 어른이 되었기에 나름대로 잘 해나가고 있지만요(웃음).

-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는 남자나 여자나 들러붙고 싶어하니까요.

: 전 그런 게 무지 싫어요! 수학여행 같은 때 몇 명씩 조를 짜게하죠? 전 조금 불량한 애들이 자기네 조에 들어오라고 했습니다만, 그런 녀석들은 껄떡대길 좋아하죠. 그게 싫어서 거절하고, 조를 짜지 못한 수수한 애들이랑 한 조가 되기도 했었죠(웃음).

- 10대 후반엔 혼자서도 전혀 쓸쓸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나요?

: 네, 조금도요!

- (웃음) 그런 의미에서 『20세기 소년』이라는 작품을 새삼 돌아보면, 1980~1997년의 일이 기본적으로 빠져있죠. 물론 거기에는 스토리상의 의도가 있는 겁니다만, 이 작품은 「몇 년도를 그렸는가」와 똑같은 정도로 「몇 년도를 그리지 않았는가」에도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시절을 그리지 않았던 걸 포함해서 말이죠.

: 분명 그런 면이 있죠. 매우 중요한 지적이라고 봅니다.

- 아까 말씀으로 보면, 중학교~고등학교 시절의 생생함을 아직 작품으로 상대화할 수 없기 때문 아닌가요.

: 아아, 말씀하시는 그대롤지도 모르겠군요. 실은 「숟가락 구부리기」 에피소드도 시기를 약간 수정했죠. 그건 제가 중학생이던 무렵에 유행했는데, 억지로 초등학생 시절로 바꿔놨습니다. 중학교 때 이야기로 하면 저한테는 생리적으로 너무 기분 나빠서요. 그래서 일부러 일본에 상륙하기 전의 숟가락 구부리기로 설정해, 그 불쾌함을 피했습니다.

- 시대를 풍미한 아이템들을 순서대로 조합하는 게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바꿔 조합함으로써, 단순히 거짓말과는 다른 장치=트랩이 만들어지죠. 그 트랩 설정의 절묘함이 우라사와 작품의 근저에 있는 느낌이 듭니다.

: 더 단순하게, 외설스럽게 말하면, 저한테는 「남자의 첫 사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뤄졌다」는 선이 있지 않을까요. 중학생을 기점으로 하게되면 아무래도 성적인 불쾌감이 나오게 되죠. 그게 제 생리에 맞지 않는다고 봅니다.

- 예를 들면 아다치 미츠루씨처럼,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해도 극단적일만큼 현실의 성적인 요소를 배제하는 작가도 있죠. 하지만 그정도로 배제해버리면, 오히려 「성의 부재」가 강조됩니다. 한편 우라사와 선생님은 같은 고등학생이 주인공인 『Happy!』에서는 어느 정도의 섹스를 묘사하고 있고, 『20세기 소년』에서는 포르노 영화의 포스터나 평범 펀치(역주: 지금은 폐간된 일본의 남성용 주간지) 같은 구체적인 아이템을 이용해 소년 나름대로의 성적인 기분을 그리고 있죠. 즉, 작가가 설정한 경계선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 그건 간단히 말하면 「웃을 수 있을 때가 좋은 때」인 거죠. 이정도가 딱 좋다는 선을 작품별로 늘 의식하고 있으니까요. 물론 묘사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깊게 묘사할 수 있지만, 점점 독자가 한정되게 될 겁니다. 저는 별로 그런 걸 보여주고 싶은 게 아니니까요. 만약 성적인 면으로 깊이 들어간다면, 적어도 「가족용」 작품이 아니게 되어버립니다. 저는 제 작품을 어떻게든 거실에서 볼 수 있게 하고 싶어요. 그래서 제 마음 속에서 위험신호가 들어오면 핸들을 급하게 꺾는 일을 가끔 합니다. 이 이상 직진하면 뭔가가 한정되게 된다 싶을 때는 말이죠.

- 「거실에서 볼 수 있게 하고 싶다」는 생각은 어디서 온 겁니까?

: 예를 들어 저는 헐리웃의 명감독 빌리 와일더를 매우 좋아하는데, 그렇게 재미있는 작품을 모두가 잊어버리는 것에 대한 반발심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재미있는 건 거실에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계속. 아마 미타니 코우키씨(역주: 일본의 유명한 극작가이자 배우, 영화감독)도 같은 생각이지 않을까요. 뭘 하든, 최종적으로는 거실에 방영할 수 없는 작품은 안 한다는 기준을 저는 버리고 싶지 않은거겠죠.


내게 있어서 「시합」은 『몬스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 빌리 와일더 이야기가 나온 김에 여쭤보고 싶은데, 『BILLY BAT』을 읽고, 우라사와 선생님은 미국 문화를 흡수해 체화한 작가라는 걸 새삼 실감했습니다.

: 그야 정말 대단히 영향을 받았죠. 전 디즈니도 쇼 비즈니스도 매우 좋아하니까요. 브로드웨이에 가서 뮤지컬을 봤을 때는 꿈만 같았습니다. 옛날부터 무조건 어른이 되면 미국에 가겠다, 그리고 뉴욕에서 한밤중에 캐딜락 뒷자석에 앉아, 갱들의 총격전 속에 몸을 숨기겠다고 생각했었을 정도였죠...(웃음).

- 대단히 단순한 방식으로 미국화되셨군요(웃음). 무방비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말이죠.

: 타케구마 켄타로씨랑 이야기할 때, 제가 미국에 대해 너무 무방비한 점에 매우 위화감이 느껴진다는 식으로 말하더군요. 타케구마씨 같은 「오타쿠 1세대」에게 있어서는 우선 디즈니 자체가 적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더 뛰어나다는 생각이 정신적 지주라면서 말이죠. 하지만 그런 반미주의도 까놓고 말하면 저희들 같은 미국의 락을 좋아하는 장발에 기타를 든 녀석들만 여자들한테 인기였던 데서 생겨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했었습니다(웃음). 그래서 『20세기 소년』은 「미국에 대한 비판이 없다」는 점에서 오타쿠들에게 있어서는 안이한 작품이라고. ...대단히 재미있죠.

- 그건 타케구마씨가 재미삼아 한 소리 아닙니까(웃음)?

: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하면서 사실은 진심이었던 것 같아요. 분명, "친구"에 의해 지배당한 세계를 구하기 위해 미국이 왔다가 "지구방위군"에게 도리어 당하거나 했으면 기뻐했을지도 모릅니다(웃음). 하지만 저는 그 정도의 분노나 한이 미국에 있는게 아니어서 그렇게 전개되진 않았죠.

- 애초에 『20세기 소년』에는 실질적인 의미에서 미국이라는 국가가 존재하고 있는 건가요?

: 그렇네요... 하지만 만박의 월석이라든가, 「밥 레논」의 "밥" 등, 역시 미국의 존재감은 저한테는 큽니다.

- 타케구마씨 이야기하곤 별개로, 우라사와 선생님은 지금까지 「타인의 평가」를 어떻게 받아들여 오셨습니까?

: 꽤 어려운 질문이군요. 저는 『야와라!』가 히트하는 바람에 소위 비평가나 평론가라 불리는 사람들한테 외면당한 시기가 길었습니다. 원래는 저도 그들과 방향성이 같았다고 보는데 말이죠. 하지만 「메이저에서 한 번 돌파구를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노력, 겨우 히트작을 냈을 때 제일 평가받고 싶었던 사람들한테 완전히 무시당해 버린 겁니다. 당시 입으로는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아도 별로 상관 없습니다」라고 하기도 했습니다만, 마음 속으로는 늘 쓸쓸했죠(웃음). 그래서 『야와라!』가 종료되고 바로, 원래의 제 방향성과 가까운 작품을 그릴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야와라!』가 정말 엄청난 지지를 받았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같은 분위기의 작품을 요구받게 되었죠. 물론 그걸 무시하는 수도 있었을지 모릅니다만, 그 때의 제가 「뭐, 만화가 인생은 기니까」라고 생각한 것도 사실입니다. 고마운 일이기도 하니까요. 그래도 역시 다음 작품인 『해피!』에서는 테니스를 소재로 하면서도 저로서는 상당히 새로운 표현에 도전했다고 생각했었습니다만... 어쨌든 드디어 시작할 수 있었던 게 『몬스터』라는 작품. 만화가 생활을 10년 하고서 드디어 마음 속으로 생각했던대로 시작할 수 있었죠. 평론가인 나츠메 후사노스케씨 말로는, 「자기가 진짜로 하고 싶은 걸 어떻게 우라사와 나오키는 10년간 참을 수 있었는지가 최대의 수수께끼」인 모양이지만요.

- 어떻게 참을 수 있었던 겁니까?

: 전혀 즐겁지 않아도 계속 뛰었던 육상부 시절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요(웃음).

- 그렇군요(웃음).

: 그래서 제게 있어서 「시합」은, 『몬스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몬스터』, 『20세기 소년』, 『플루토』를 읽어가다가 나츠메씨는 뭔가를 느껴 『야와라!』를 다시 읽어보고는, 「우라사와 나오키는 처음부터 같은 걸 하고 있었다!」고 생각, 저에 대한 평론을 전부 다시 쓰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더군요.

- 마침 우라사와 선생님이 데뷔한 80년대 초에 신진학자나 문화인들에 의한 뉴아카데미즘이 생겨나 대중문화와 동조해 갑니다만, 당시 만화비평 분야에도 그런 조류가 있었죠. 하지만 이번 취재에 앞서 과거의 문헌을 조사해봤는데, 우라사와 작품에 대한 체계적인 비평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만큼 압도적인 판매량을 자랑하는 만화가치고는 이례적인 것 같은데요. 반대로 말하면, 이야깃거리로써 소비되지 않았던 보기 드문 존재라고도 할 수 있고, 그게 우라사와 선생님이 오늘날까지 만화가를 계속하는데 있어서 크게 작용한 게 아닐까요.

: 그런 면도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 시절에 소위 문화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들어본 적도 없는 말을 써서 이러쿵저러쿵 어렵게 말하는 걸 보면서, 저는 비트 타케시 쪽이 더 정답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요. 실제로 지금 돌이켜보면 분명 타케시씨 쪽이 더 정답이겠죠.

- 아까 화제가 된 오오토모 카츠히로씨는 그야말로 그런 비평에 의해 소비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왜냐하면 오오토모씨의 문제는 "읽히는" 것 이상으로 "이야기되는" 만화가였던 데서 시작된 느낌이 들거든요.

: 어쩌면 그런 면도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하지만 오오토모씨 스스로는 그런 만화가가 되려고 했던 게 아닐테니까, 어떤 형태로 말려들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네요.

- 우라사와 선생님은 과거 뉴웨이브와 거리를 두었듯이, 문화인의 밥벌이 수단으로 소비되는 세계와 옛날이나, 그리고 옛날 이상으로 지금도, 강한 의지를 갖고 거리를 두고있지 않은가 싶군요.

: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죠(웃음). 하지만 뉴아카데미즘이니 훗날의 오타쿠 문화에 대해, 육상부에서의 달리기와 팔굽혀펴기로 단련해 온 인간으로서 몸을 움직여서 땀을 흘리지 않는 이론만 앞선 문화는 틀렸다는 생각이 확실히 강하게 있습니다. 전보다 지금이 더 강할지도 모르죠.


아톰을 그리면 왠지 몹시 안타까워진다

- 테즈카 오사무씨에 대해 여쭤보겠습니다. 우라사와 선생님은 테즈카씨에 대한 동경을 정말 여러번 공언하셨죠.

: 정말 많은 걸 배웠으니까요. 저 뿐만 아니라 테즈카 선생님한테 영향을 받지 않은 만화가는 없습니다.

- 테즈카씨는 종종 극화가 나옴으로써 자신의 방향성을 잃었다고 말씀하셨죠.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극화가 나옴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그림체와 명확히 차별화할 수 있었고, 원래 우라사와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그리려고 하면 뭐든 그릴 수 있었던 분이니까요. 아까의 우라사와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라사와 선생님이 테즈카씨로부터 계승하신 것은 「고민하지만 망설이지 않는 강인함」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 제 방식으로 표현하면 「기분 좋은 짓궃음」이라고 할까요. 어렵군요.

- 얼마 전 「테즈카 오사무의 유전자 어둠 속의 반전」이라는 전시회에 다녀왔는데, 여러 크리에이터들이 테즈카 작품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어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흥미를 느껴 참가한 크리에이터들의 오리지널 작품도 보러 갔죠. 그런데 그들의 오리지널 작품은 너무 획일적이어서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더군요. 테즈카씨를 좋아하는 건 좋지만, 그걸 바탕으로 테즈카씨가 죽는 순간까지 목표로 한 표현 이상의 것을 실현하려는 의지를 갖고 자기 자신도 작품을 계속 만들어 가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작가성을 확립한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렇군요.

- 그 때 우라사와 선생님이 『플루토』를 그려야만 했던 진짜 이유를 안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작품은 『철완 아톰』 내에서도 명작이라 이야기되는 『지상 최대의 로봇』의 리메이크죠. 그걸 그리려면 「이걸로 만화가 생명이 끝나도 상관없다」고 할 정도의 각오가 없으면 무릴 겁니다.

: 그런 각오 같은 건 절대 아닙니다. 뭐, 원래 제가 「누가 『지상 최대의 로봇』을 리메이크할 만한 기골있는 사람 없나?」라고 한 것에서부터 그 기획이 시작되었죠. 그랬더니 「니가 해」라는 분위기여서 「무리야, 무리!!」라고 했었습니다만, 프로듀서인 나가사키(타카시)씨랑 의논을 시작해보니, 남한테 넘기고 싶지 않을 정도로 미릿속에서 재미있어졌기 때문에 결국 제가 하게 되었습니다(웃음). 저희들은 리얼타임으로 테즈카 오사무가 발한 "빛"을 확실하게 보았으므로, 지금 우리가 전승하지 않으면 후세에 전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죠. 『플루토』의 경우는 아직 완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어떻게 될 지 모릅니다. 다 그리고서야 비로소 의미를 알 수 있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아톰이 하늘을 날고 있는 장면을 그리면 왠지 매우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탄생연도인 2003년을 지나고도 아직 아톰 같은 로봇을 만드는 꿈이 실현되지 않은 게 큰 이유인지도 모르겠네요. 이게 『철인 28호』였으면 태평양 전쟁을 떠짊어진 일본군의 최종병기가 전후 초기에 만들어졌다는 식으로 시간축을 알기 쉬운데, 『철완 아톰』은 1950년대에 반세기 뒤의 이야기를 하고 있어 차원이 전혀 다르죠. 얼핏 『철인 28호』가 더 로맨틱해 보입니다만, 아톰이 훨씬 더 희망과 절망의 정도가 크니까요.

- 확실히 우라사와 선생님의 아톰은 어딘가 슬픈 얼굴을 하고 있죠. 처음 등장했을 때도 비가 내리고 있고...

: 첫 등장씬은 상징적이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역시 그 슬픈 분위기의 정체가 뭔지, 저도 모르겠어요. 어시스턴트하고도 자주 이야기합니다. 「왜 얘가 나오면 이렇게 슬퍼지는걸까?」라고... 비치 보이즈의 「I Just Wasn't Made For These Times」(『Pet Sounds』수록곡)라고 있죠? 굳이 말하자면 그 분위기에 가까운지도 모르죠. 그 곡 『Smile』이라는, 원래 다음에 낼 예정이었는데 발매되지 않은 앨범의 존재를 암시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 태어날 수 없는 숙명을 짊어진 슬픔 같은 게 아톰을 그릴 때마다 덮쳐오는 걸까요. 탄생연도를 맞기까지의 50년 사이에, 『철완 아톰』이라는 작품이 짊어져야했던 희망과 절망의 양극이랄까...

- 『플루토』는 당초, 테즈카씨의 그림체에 가까운 형태로 아톰이나 기타 캐릭터를 그리려고 했었죠?

: 그렇습니다. 첫 회의 때 제가 테즈카 마코토씨(역주: 테즈카 오사무씨의 아들)한테 건낸 프로덕션 노트가 있는데, 그걸 이번에 내는 최신간의 부록으로 할 생각입니다. 거기에 그린 건 누가 봐도 완전히 아톰이죠. 그리고 이미 프로덕션 노트 단계에서 우비를 입은 아톰이 등장하는, 예의 비오는 장면을 그렸었습니다. 왜 비가 내리게 했냐면, 아톰의 뿔을 후드로 감추고 싶었거든요. 처음에 후드로 뿔을 감춰두고, 게지히트가 「네가 아톰군이지?」라고 해서 「네」하고 후드를 벗으면 아톰의 뿔이 나타나는 연출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마코토씨가 「아버지의 흉내가 아니라, 우라사와씨의 그림으로 그려주세요」라고 말씀하셔서... 하지만 그건 그거대로 또 부담되어서(웃음). 그래도 어떻게 제 그림으로 그리기로 했죠.


싫은 것일수록 철저히 연구한다

- 만화가 생활 25주년을 맡은 금년(역주: 인터뷰 시점에서의 이야기로, 지금 기준으로는 작년을 말합니다), 가수로서 첫 앨범을 내셨습니다. 앨범 제작을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 만약 젊었을 때 냈더라면 상당히 쓰라린 경험이 되었겠죠. 「이 녀석, 붕 떠 가지고」라는 말을 들었을 겁니다(웃음). 그런 의미에서는 이 나이까지 기다리길 잘했다 싶어요. 만화는 10년 참았지만 음악은 몇 십년 참았습니다(웃음). 아직 객관화시킬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만, 멋진 뮤지션들이 뒷받침해 주어 신인치고는 뭐 잘하지 않았습니까(웃음). 「밥 레논」이라는 곡은 9.11 밤에 만들었는데, 감정을 억눌러 용케 그 정도로 추상적인 내용으로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드네요.

- 「밥 레논」에는 양질의 유머도 담겨 있죠. 「♪ 지구 위에 아침이 와서...」라는 "아키레타 보우이즈"(역주: 1930-40년대 활동한 일본의 음악 꽁트 그룹)의 패러디로 말이죠. 그래서 아사쿠사 연예홀(역주: 주로 만담 등을 공연하는 공연장)에서 불러도 될 정도로 이상합니다(웃음).

: 아아, 그 익살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아요. 그래서 「♪ 구타다 스라다」라고 넣으면 알까 싶어 해봤는데도 말이죠. 락에서 유머는 대단히 중요하죠. 그리고 저희 세대는 음악을 허용하는 폭이 넓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어릴 때 그룹 사운즈를 보고싶어 음악 프로그램을 보는데, 함께 마히 나스타즈나 로스프리모스 같은 것도 보게 되었었으니까요. 녹화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 관심있는 것만 선택하는 문화는 안 좋아요. 싫어하는 것도 먹어야죠.

- 싫어하는 걸 적극적으로 흡수한다는 건 너무 힘들지 않습니까?

: 하지만 그걸 통해 인식이 바뀔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중요한 건 그럴 기회를 갖느냐 아니냐죠. 싫은 걸 억지로 받아들이라는 게 아니라 말입니다. 저는 조령모개는 매우 좋은 거라고 봐요. 싫어하는 걸 분석하는 것도 중요한데다, 어쩌면 자신의 완전한 공부 부족이었음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죠. 그래서 싫어하는 것일수록 철저히 연구합니다(웃음). 그러면 제가 싫어하는 그 J-POP 밴드도 내일은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고, 그러다 딥 퍼플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웃음).

- 딥 퍼플은 왜 싫은겁니까?

: 억지로 끌어모아 맞춘 느낌이 추하달까, 어쨌든 쭉 연구하고 있습니다. 레드 제플린은 흑인 음악이 뿌리니까 매우 좋아하고, 딥 퍼플은 클래식이 뿌리라서 싫은 건가하고 말이죠.

- 카피는 하지 않았습니까?

: 네, 했죠. 하지만 음악 프로듀서인 와쿠이(코지)씨도 마찬가진데, 저희는 별로 빨리 치는데 능숙하지 않았서...

- 빨리 치지 못해서 아메리칸 락을 한 거군요. 밴드 소년들의 흔한 패턴이네요(웃음). 하지만 우라사와 선생님의 라이브를 보니 치고있는 기타로 전체를 지배하고 있어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 저 자신은 몰랐는데, 와쿠이씨의 말로는 「닐 영처럼」하는 모양입니다.

- 그건 『20세기 소년』의 켄지가 마지막 락 페스티벌에서 검은 레스폴을 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는 것 같군요.

: 아아, 확실히 그렇네요. 그건 행사장에서는 험버킹이 더 소리가 굵을까 싶어서였죠(웃음). 그리고 켄지의 밴드는 3 피스라서 레스폴이 더 음압이 날 것 같았고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에 신경쓰고 있죠(웃음).


자신이 가장 엄격한 고객일 것

-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서는 어떤 비젼을 갖고 계십니까?

: 독자 여러분이 받아들여 준다면 『BILLY BAT』은 상당한 대작이 될 것 같습니다. 다만 만화를 그리는 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체력도 기력도 소모하기 때문에, 상황을 봐야겠지만요. 선배 만화가들은 대개 60대에 돌아가셨으니까, 저도 슬슬 무리할 수 없을 때니까요. 그렇다고 「등신대의 표현」이니 하면서 편하게 하려고 하면 독자들이 기뻐할 만한 작품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읽고 싶은 건 역시 기적의 플레이일테니까요.

- 현재는 어떤 체제로 만화를 그리고 계신 겁니까?

: 먼저 플롯을 공동으로 제작하는 나가사키(타카시)씨랑 회의를 하는데, 그 때는 만화가로서의 저 자신을 지우고 프로듀서로서의 우라사와 나오키에 전념하기 때문에, 만화가가 싫어할만한 소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죠. 이 프로듀서가 정말 대강대강 하는 녀석이라, 만화가의 부담 같은 건 전혀 고려하지 않고 계속 귀찮은 이야길 합니다(웃음). 그래서 작업장에 돌아온 뒤 회의한 내용의 메모를 보고 만화가로서의 우라사와 나오키가 「아, 귀찮아!!」라고 절규하죠(웃음). 뭐 회의는 그런 식입니다. 얼마 전 NHK의 『프로페셔널 일의 방식』을 보니 미야자키 하야오씨도 『벼랑 위의 포뇨』를 만들 때 계속 귀찮다고 하고 있어 「이해가 간다」 싶었습니다(웃음).

- 그림의 경우 어시스턴트한테 맡기는 부분도 당연히 있죠?

: 으음... 맡기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역시 만족할 수 없어서 배경까지 직접 밑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마감은 지키면서도 퀄리티는 절대 떨어뜨리면 안된다는 에도의 장인 같은 면도 있으니까요. 맞아요, 장인을 동경합니다. 어느 정도 수준의 재미를 확실히 지킨 작품을 무뚝뚝한 얼굴로 세상에 내놓는 거죠. 하지만 그 대신 제자한테는 엄합니다. 「바보야, 이런 걸 남들한테 보여줄 수 있냐!」하는 식으로 말하는 거죠. 하지만 의외로 그런 분위깁니다. 저희 작업장은.

- (웃음) 그런데 우라사와 선생님의 카타르시스는 뭡니까?

: 그건... 뭘까요(웃음)? 레코드 가게에서 LP판을 한 장 한 장 보고 있을 때일까요. 그리고 최근, 전 플리트우드 맥의 린지 버킹햄의 신작이 매우 좋았죠. 딜런도 닐 다이아몬드도 신작이 좋았고요. 젊은 사람들도 들었으면 합니다. 그런 좋아하는 가수의 신보나, 중고 레코드 가게에서 사온 LP판 등에 밤 중에 모두가 잠들어 조용해졌을 무렵 레코드 침을 내려보는 겁니다. 그런 걸 들으면서 「살아있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요즘도 밤마다 있습니다.

- 우라사와 선생님의 경우, 살 레코드를 일일이 고르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으니까요...

: 아뇨, 그럼 재미가 없어요! 이게 집의 선반에 있으면 재밌을지 어떨지를 생각해야죠. 얼마 전에도 하타나카 요우코의 『백일몽』이라는 LP판을 발견했는데, 누드 포스터 포함에 오나페츠가 어쩌고 하는 띠지가 붙어있더군요(웃음). 그런 걸 보고 「이게 우리 집 선반에 있으면 재밌겠지만, 애들이 보면 위험하다」느니 하는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제 마음 속으로 혼자 문답을 하는 게 중요하죠. 이건 OK인가, 이건 NG인가, 그런 사고를 단련하는 건 창작을 하는데 있어서 정말 도움이 됩니다. 늘 마음 속으로 「이건 된다, 이건 안 된다」 따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모든 것의 뭔가를 판단하는 저울에 올려놓고 있는 것 같은...

- 전에도 어디서 그 저울 이야기를 하셨었죠. 우라사와 선생님이 창작을 할 때, 될지 안 될지 올려보는 저울. 그 저울로 뭘 재고 있는 겁니까?

: 아뇨, 별로 대단한 건 아닙니다. 말하면 단순하고, 말하지 않는 편이 재미있기 때문에 말하지 않기로 하고 있습니다(웃음).

- 그런 감을 갖고 있는 사람은,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있습니까?

: 으음. 최근에는 퍼퓸이라든가죠(웃음).

- 만화도 음악도 포함해, 우라사와 선생님의 표현이라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 사실은 남 앞에서 노래하는 것도, 만화를 그리는 것도, 영화를 만드는 것도, 모든 표현 행위는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일 쿨한 입장은 아무 것도 발신하지 않는 것이죠. 아무 것도 발신하지 않고 삐까닥하게 서서,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모든 것에 종종 불평을 하는 게 제일 편해요(웃음). 하지만 그러면 문화는 시작되지 않으니까, 부끄러운 일이지만 하는 겁니다. 그 부끄러움을 넘어설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생각하고, 퀄리티의 허들도 넘어, 그렇게 해서 만든 것을 더 많은 사람이 보게 하는 것이 제가 매번 하고 있는 작업입니다. 기타를 들고 치기 시작하는 건 사실 매우 부끄러운 행위니까(웃음), 다들 따뜻한 눈으로 지켜보면 안 됩니다(웃음). 아이가 「만화가가 되겠다!」고 하면 부모는 막아야죠(웃음). 거리의 가수 같은 건 물론 금지하고요. 체포당해도 하겠다는 정도의 상황이 좋습니다. 부모가 반대했지만 만화를 그리고 싶으니까 그린다는 식의 상황으로부터 비로소 뭔가 태어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자신이 제일 엄격한 고객이 되는 것이겠죠. 아니 실제로, 우라사와 나오키라는 손님이 제일 질이 나쁘니까요(웃음).

(끝)


자료 출처: Quick Japan 외

덧글

  • 호잇 2012/11/05 09:51 # 삭제 답글

    몬스터랑 마스터키튼도 좋았구... 앞으로도 쭉 지켜보고싶은 만화가네요 :)
  • Guramssu 2012/12/20 23:24 #

    전 최근에 이 글에 언급된 <플루토>라는 작품을 봤어요. 언급하신 <몬스터>와 <마스터 키튼> 만큼 좋았습니다. 추천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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