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문재인의 낮은 행보 society

지난 해 10.26 재보선에서 박원순 후보의 승리는 올해 대선 레이스에서 안철수-박근혜 구도에 문재인 이사장이라는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켰다. 안철수 교수가 박원순 후보에게 이른바 '아름다운 양보'를 하면서 지지율을 굳혔었지만, 안 교수 특유의 성정이 빚어낸 침묵과 고민의 행보는 현실적인 정치 배경을 가지고 있는 문 이사장에게 양자 구도에 비집고 들어갈 계기를 마련해주었으며, 문 이사장의 '대선' 주자로서의 지지율은 시간이 갈수록 높아져만 갔다. 올해 들어선 문 이사장의 지지율이 '안-박'과 비슷해졌으며, 이제 어느 누구도 문 이사장이 대권 주자감이 아님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는 올해 들어 명백한 '거물'이 되었고, 기존 정치인들에 비해 베일에 가려져 있던 그의 캐릭터는 'SBS 힐링캠프'를 통해 아주 긍정적으로 드러났다. 그는 바로 이전에 출연했던 박 위원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탈하고 솔직한 모습, 그리고 '정의롭고 힘센 촌놈'의 이미지를 대중에게 각인시키는데 성공함으로써, 그토록 강렬했던 노무현 前 대통령의 캐릭터를 벗어나 그 '그림자'를 기반으로 새롭고 참신한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 이사장의 정치 행보 앞에 '레드 카펫'만 깔려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게 단기간에 쌓인 이미지는 언제든 훅 갈 수 있는 것이 이 바닥의 생리라는 것을 그들도 알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노 前 대통령의 '그 선택'은 당신께서 원했었든, 그렇지 않았든 어쨌든 친노를 부활시켰고, 아울러 소위 '진보 진영'을 먹여살렸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노 前 대통령이 남긴 유산을 바탕으로 자신의 정치를 구상하는 문 이사장에게 필요한 것은 선거 경험이었을 것이다. 물론, 지난 박 시장의 경우를 보더라도 선거 경험이라는 것이 당선되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요소는 아닐 것이다. (다만, 10.26 재보선 선거 과정에서 안 이사장의 지지율 중 대부분을 얻어냈던 박 시장은 아마 선거가 더 길어졌다면 더 불리했었을 것이다.)

해서 문 이사장은 국회의원 선거를 선택했고, 결국 노무현 처럼 부산을 선택했다. 결론적으로 현 지지율로 봐서는 큰 변수가 없는 한 당선되리라고 본다. 27세의 손수조 새누리당 예비 후보가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지만, 아직 문 이사장을 상대하기에는 여러모로 불리하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이야기 하나가 생각난다. 지난 해 재보선 때, 지하철에서 두 남성이 나눈 이야기. "제 장인 어른은 정치적으로 보수거든요? 근데 이번에 박원순 뽑았어요. 왠지 아세요? 나경원은 여자라서 안된데요.") 우리 나라의 정치 환경에서, 여성 후보가 거물을 상대하긴 아직도 버겁다. 여든, 야든 말이다.

그런데 문 이사장의 행보가 조금 수상하다. 무언가 베일에 쌓여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그는 아주 조용히 지역구를 돌아다니고 있다. 노란 잠바를 입고. 철저히 '낮게' 선거에 임하고 있다. 거대한 담론, 국가 차원의 문제점, 대중을 휘어잡을 강력한 선동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가 운용하는 이슈들 중 그나마 가장 큰 것이 박근혜 대표의 정수장학회 뿐이다. (그런데 이것도 어떤 전국적인 측면에서의 활용이 아니라 부산 민심을 공략하기 위한 것 정도로 보인다.)

거대한 담론을 이슈화시키지 않는 것이 그에게 득일까, 실일까? 무조건 득이라고 본다. 대중들, 특히 부산 민심은 한미FTA니, 야권연대니 그런 거 참 귀찮아 한다. '내 묵고 사는 거 하고 무슨 상관이고.' 노 前 대통령이 그토록 도전했지만 결코 받아주지 않았던 곳이 바로 그 부산이다. 물론 지역주의의 문제가 가장 컸지만, 또 노 前 대통령의 성격상 불가능했겠지만(약한 부분이기도 했다고 본다), 문 이사장처럼 철저한 이미지메이킹만 했었으면 좀 더 나은 결과가 있었을 것이다. 가장 정치적이면서도 가장 정치적이지 않은, 그곳이 바로 그 동네의 특징이다.

만약 문 이사장이 이번 총선에서 낙선한다면, 오히려 대권의 가능성은 더 커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바람을 탔다. 그리고 노 前 대통령이 남긴 유산은, 그 바람의 강도와 지속성을 '기적적으로' 강화시켰다. 부산에서 당당하게 실패하기만 한다면, 대중들은 결집할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문 이사장이 이번 총선에서 낙선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불안하긴 하지만, 또 현실 정치인의 입장에서 그런 리스크를 감당해야 할 이유도 없겠지만, 만약 당선된다면 그가 이번 대선에 나갈 확률이 더 낮아질 것 같기 때문이다. 부산은 김영삼 前 대통령 시절 이후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만한 곳이 아니다. 전국의 민심과 다른 곳이라는 말이다. 부산에서 버림 받더라도, 문 이사장이 실망할 필요는 없다. (물론, 버림 받지 않을 확률이 99%에 육박한다고 본다.)

노 前 대통령과 함께한 경험을 밑천 삼아 아주 유리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문 이사장, 그는 아마도 노 前 대통령이 받았던 사랑보다 더 강력하진 않지만, 더 꾸준한 사랑을 받을 정치인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그 경험이 당사자인 문 이사장에게나 문 이사장을 보고 있는 대중들에게나 좋은 결과(문 이사장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았다. 아주 치명적인 실수에 운이 속된 말로 '오지게' 나쁘지만 않는다면, 정치인으로서의 그의 행보는 적어도 향후 10년은 탄탄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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