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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근대철학 해체의 양상들 Academic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합시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니체는 의미와 가치, 힘과 권력의지란 개념을 통해 근대철학의 출발점과 목적지를 해체시킵니다. 근대적 문제설정의 지반이었던 주체와 진리를, 그리고 그에 기반한 윤리학을 철저하게 해체시켜 버린 니체는 그 결과 새로운 비판철학으로서 계보학을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해체 작업은 맑스나 프로이트의 그것과 달리 지극히 공격적이었습니다. 

맑스에게 중요한 것은 혁명적 실천의 문제였고, 그것을 철학적으로 혹은 이론적으로 사고하는 것이었습니다. 포이어바흐나 헤겔에 대한 비판은 그런 한에서 필요한 최소한으로 제한된 것이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근대철학 전반에 대한 비판은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에게 더 중요했던 것은 근대사회에 대한 이론으로서, 또한 이데올로기로서 정치경제학에 대한 비판이었으며, 근대사회 자체에 대한 실천적 비판(혁명)이었습니다. 따라서 근대철학에 대한 맑스의 철학적 비판은 근본적이지만, 광범위하거나 전면적이진 않습니다. 어찌 보면 근대적 문제설정에 대한 그의 비판은 매우 조용하고 '절약적'입니다. 

프로이트의 '비판' 역시 근대철학에 대한 비판은 전혀 의식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단지 성실하고 탁월한 정신과 의사로서 자신의 작업에 충실했던 것입니다. 다만 그가 던진 돌멩이가 바로 근대철학의 머리에 떨어졌던 것뿐이지요. 그는 철학의 영역에서 자기가 해체한 게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반면 니체의 비판은 극히 명시적일 뿐 아니라 매우 공격적입니다. 그가 겨냥하고 있는 목표는 바로 근대철학 전체, 아니 좀더 확대해서 말한다면 소크라테스 이래 나타난 서양철학 전체입니다. 따라서 그는 이 타깃을 향해 강력한 포탄을 화려하고 요란스럽게 쏘아댑니다. 이런 의미에서 니체는 자기가 해체시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즉 자기의 철학적 작업이 야기하는 결과가 어떤 것인지 매우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는 그것이 근대철학 비판이라기보다는 소크라테스 이래 서양철학 전반에 대한 비판이라고 생각했지만 말입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근대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많은 탈근대적 철학자들에게 니체는 가장 유용하고도 훌륭한 벗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 세 사람이 근대적 문제설정을 해체시키는 방식에서 볼 수 있는 공통성과 차이를 간략히 일변해 보는 것도 무용하진 않을 것 같군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들의 공통성은 주체와 진리라는 개념을 기둥으로 삼아 만들어진 근대적 문제설정 자체를 해체했다는 점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적지 않지만 거기 내재된 근대적 사고방식으로서의 주체철학과 과학주의, 그리고 계몽주의에 대한 비판과 거부 역시 이들의 공통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특히 주체의 개념과 관련해서 이들이 보여주는 공통성은 별도로 지적될 만한데, 그것은 주체란 자명한 출발점도 아니며 통일성을 갖는 확고한 중심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것은 주체 외부의 관계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며, 이질적인 복합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결론을 통해 이제 주체는, 그리고 그 주체의 사고와 행동은 그것을 만들어내는 요소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동태적으로 파악해야 할 대상이 됩니다. 

반면 이들의 차이는 한마디로 해체를 수행하는 데 사용하는 개념이 다르다는 것이며, 그 결과 창출해내는 새로운 문제설정 역시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맑스의 경우 핵심적으로는 '실천'이란 개념을 통해 대상과 주체, 진리와 정치 문제 전반을 해체하고 다시 정의내리며, 그 결과 역사유물론이라고 하는 새로운 문제설정이 형성됩니다. 프로이트의 경우는 무의식이란 개념을 통해 특히 주체의 개념을 철저하고 강력하게 해체하고, 이 무의식을 대상으로 하는 이론으로서 정신분석학을 만들어냅니다. 니체는 의미와 가치, 힘과 권력의지란 개념을 통해 근대철학의 뿌리를 노출시키고 해체시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해체의 사고방식을 좀더 발전시켜 계보학이라는 또 하나의 비판철학을 만들어냅니다. 

이들이 보여주는 공통성은 이들이 서 있던 근대적 지반의 공통성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이들이 사용하는 개념과 방법은 달랐지만, 이들이 서 있던 지반은 공통된 것이었고, 따라서 해체의 결과는 공통성을 강하게 갖게 됩니다. 반면 이들이 보여주는 차이는 각자가 근대적 지반에 대해 취하는 입장과 태도의 차이에서, 그리고 그것을 해체하는 데 사용한 방법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각자가 집중적으로 착목하고 있던 지점, 그리고 힘을 모아 돌파해야 할 지점이 달랐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이후 현대철학자나 이론가들에 의해 근대철학의 경계를 넘어서는 데 강력한 도구로 사용됩니다. 이들의 차이는 그 도구의 다양성과 돌파 지점의 다수성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리하여 근대철학이라는, 서양철학의 거대한 흐름을 넘어서는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출처>
이진경, <철학과 굴뚝청소부>(2005). 그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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