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갈등의 원인 trifles

이번 설날에 창원에 있는 고향집에 다녀왔다. 고향집이라고 해봤자 어차피 그곳도 서울과 마찬가지로 도시이고, 집이라고 하는 곳도 내가 살았던 곳이 아니라 얼마 전 이사한 곳이기 때문에 딱히 그리움에 사무치는 공간은 아니다. 다만 그곳에는 내 가족들과 친구들이라는, 어린 시절에 함께 했기 때문인지 쉽게 잊기 어려운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것으로나마 '고향집'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고향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지'(헤세) 

하지만 솔직히 내려갈 때마다 적응하기가 어렵다. 너무 오래 혼자 살았기 때문일까? 만약 그들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럴 것이다. 홀로 지낸 오랜 세월은 나에게 개인주의를 심어주었고, 나는 나랑 같은 공간에서 숨쉬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 안에서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가 없다. 일상적이지 않은 것이다. 만약 그들이 틀렸다면,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앞으로도 크게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빨리 취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면 그들의 갈등은 없어질까? 아래에서 적을 내용의 주제는 결국 돈이라서, 돈을 많이 벌면 지금의 갈등의 대부분은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단언컨대 새로운 갈등이 생길 것이다. 마지 '페스트'(까뮈)처럼, 우리는 이 죽음의 병에서 탈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인간의 운명 아닐까. 

첫 번째 다툼의 주제는 아버지의 임금에 관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개인사업(택배 사무소)을 접고 몇 달 전부터 다른 택배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자의든 타의든 여러 가지의 악재 때문에 아버지는 지난 여름 사업을 정리하였고, 거기에 속해 있던 채무는 아버지의 통장 가압류라는 방식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발빠르게 재산을 정리하여 어쨌든 일단의 위기는 넘겼다. 처음 몇 달 동안 아버지가 받던 임금이 들어오는 통장은 아버지 명의였지만, 그 통장이 가압류 되자 아버지는 지난 달부터 월급 통장을 어머니의 통장으로 바꿨다. 그래서 설 첫 날이었던 일요일 밤, 아버지는 다음 날 아침 대구에 가기 위해 월급 통장을 확인했지만, 어머니의 통장에 아버지의 월급은 없었다. '입금했다고 하던데...' 아버지는 담당자에게 연락했고, 담당자는 원래 아버지의 통장에 넣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왜 전에 말한 곳으로 넣어주지 않았냐고, 이미 어머니의 통장에 넣었다고 말하지 않았냐고 따졌다. 두 명의 담당자는 왜 다시 한 번 말해주지 않았냐고 아버지를 나무랐다. 아버지는 왜 나를 그렇게 비참하게 만드냐며, 그렇게 자괴감에 빠지셨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는 폭발했고, 그 격정에 가득찬 토로는 몇 시간 동안 이어졌다. 아버지는 까맣게 탄 속을 누른채 잠자리로 들어갔다. 나는 어머니의 격정이 충분히 이해됐지만, 마음이 편해야 할 고향에서 오히려 더 마음이 불편해지니 참 속상했다. 결국 대구 큰 집에 줄 돈이 없어 우리 가족은 설날 큰 집으로 가지 못했다. 

다음 날 점심쯤, 내가 작은 누나와 점심을 먹고 있었다. 점심을 차려온 어머니는 우리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인 한솔이를 걱정했다. 한두 달 전부터 한솔이가 앓고 있었는데, 어머니께서는 우리가 밥을 먹고 있는 옆에 앉아 한솔이를 살피며 얘가 죽으려나 보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계속 했다. 전날 데려온 남자친구에 대해 엄마에게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 작은 누나는 결국 폭발했다. 왜 계속 재수없게 죽을 것 같다는 말을 하냐고, 병원도 안 데려가고, 엄마는 굉장히 짜증나는 스타일이라고. 결국 누나는 울면서 숟가락을 놓았고, 엄마는 화를 내시며 우셨다. 나 역시 더이상 밥이 넘어가지 않아 숟가락을 놓았다. 엄마는 부엌에서 그릇가지를 던지며 화를 내셨고, 나는 답답하기도 하고 그래서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태우며 많은 생각을 했지만, 속이 상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담배 두 개피를 연달아 피며, 정말 오랜만에 눈물을 흘렸다. 어차피 대구를 가지 않았으니 지금 당장 서울로 돌아오려고 생각했다. 마음이 불편해지는 고향집, 굳이 좋은 의미를 억지로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예전에서 이러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잊고 있었다. 고향집이란 더이상 나에게 마음이 편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그 지독한 현실성 때문에 결코 모든 것을 잊을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어쩌면 내 고향보다 내가 혼자 살아가는 서울이 오히려 더 비현실적인 공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혼자 지내기 때문일까. 현실감이란 나 자신에 대한 깊은 통찰이 아니라 주변 사물에 대한 파악에서부터 온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그렇게 빨리 올라오려고 했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며 참았다. 만약 내가 그 때 올라가버렸다면, 어머니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 아파했을 것이다. 불난 집에 부채질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참으면 되는데. 내 가족인데. 내 어머니인데. 두 시간 정도 방에 들어가 속을 달래고 계셨던 어머니는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거실로 나오셨다. 그 순간 나는 이 사람이 지금 우리집의 실질적인 가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장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참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셨고, 작은 누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토라진 작은 누나는 쉽게 풀리지 않았고, 방에서 잠을 자고 계시던 아버지와 나는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두신 시골집과 과수원을 둘러보러 갔다. 다 둘러본 후 근처에 있던 외갓집에 들러 외가 쪽 친척들을 만났고, 그날은 밤 늦게까지 외갓집에 머물렀다. 

오후에 과수원에서 내려오면서, 어머니는 모든 것은 돈이라고 했다. 돈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며, 다른 모든 것은 돈이 없으면 큰 가치가 없다고 하셨다. 나도 나름대로 그에 대해 생각이 있는지라, 예전에서는 어머니의 이런 말에 동의하지 못했다. 나는 돈이란 언제나 핑계에 불과할 뿐이며,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 대해 첨언하자면, 어머니께서는 작은 누나의 남자친구가 로템이라는 회사의 여러 하청업체에 근무하는 사람이고 집에 돈도 없는 사람이라서 싫다고 했었다. 결국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에피소드 모두 돈에 관한 것이었다. 이러니 나는, 어머니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돈이 있었다면, 어머니께서 그렇게 화내지 않으셨을텐데. 만약 우리집에 돈이 많았다면, 작은 누나가 그리 돈이 많지 않은 남자와 결혼하더라도 어머니가 불안해하지 않으셨을텐데. 그리고 아버지는 그렇게 주눅이 들지 않았을텐데. 그리고 내 속도 크게 상하지 않았을텐데. 하여 이런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우리네 삶에서 돈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쩌면 10%도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돈을 제외한 다른 요소 중에 그 10%를 넘는 것은 없을 것이고, 게다가 돈이 차지하는 비율은 그 정도지만 그 역할은 10% 이상일 것이다. 때문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아닐까. 게다가 여기는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 우리의 의식은 자본주의에 지배되고 익숙해져 있을 수 밖에 없다. 언젠가 바뀐 체제가 도래할 것이고, 내가 그것을 항상 의식하고 살 것이라는 예상과 다짐은 시간이 흐를 수록 약해진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 여유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사회적 인간은 보수화되는 것일까. 

참 세상 살기가 어렵다고 느껴진다. 밑도 끝도 없는 현실을 생각하며 살아가자니 오히려 그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세상 일이 언제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고, 어제 '영도다리를 건너다'에서 배우 정진영이 말했다. 비록 시시포스와 같은 운명과의 거대한 전쟁에는 미치지 못할 것 같지만, 일단은 가보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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