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나의 아름다운 음악을 위해 너는 죽어야 한다' trifles

지난 3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세속적으로 살아온 시기였다. 09년 복학 후 학교 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축구 동아리 회장, 농구 대회 우승, 독서골든벨 등을 하면서 내 사회적 인맥은 아주 넓어졌다. 원래 성격이 초면에 말도 잘 걸고 낯을 가리지 않는 성격이라 내 인맥은 비약적으로 넓어졌고, 어쩌면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선 오히려 내가 가장 넓은 인맥을 가진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그만큼 내 주변엔 사람이 많아졌다. 많은 고민들이 있었고, 결국 난 나를 알기 위해 스스로 폐쇄적으로 변해야 함을 느꼈다. 인생의 목표가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라면, 많은 사람들을 알아가면서 나는 나 자신을 어느새 잊고 있었다. 나 자신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굳이 꼭 거창한 것은 아니다. 내가 예전에 잘나갔던 적도 없으니, 아직 나는 나 자신이 뭔지 잘 모른다. 다만, 이 길을 통해서는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몇 년간 나와 가장 가깝게 지냈던 후배 이X현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둘 다 할 일 없는 인간들인지라 우리는 자연스럽게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나는 이 친구의 성격적 갑갑함이 싫었고, 그래서 많이 갈궜다. 주변 사람들은 '왜 그렇게 갈궈'라는 말을 던지곤 했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어느새 나보다도 더 그 친구를 갈구고 있었다. 그 친구가 뭔가 잘못됐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잘못되어 있으니까, 그 친구가 특별히 잘못된 것은 없다. 다만, 내가 그 친구와 함께 있으면 나는 나의 성격이라는 속박 안에 갇힌 채 규정되어 버리는 것 같았다. 결국 그 친구 캐릭터가 명확했다는 말일까? 젊은이 치고 이상할 정도로 뭔가에 얽매여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친구의 그런 얽매임이 갑갑해 나는 얽매임 없는 나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얽매였든 얽매이지 않았든, 내가 어느 하나로 규정되어도 괜찮은 것인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후배와의 관계가 상징하는 나의 사회화, 전혀 매력적인 내가 되어가는 과정이 아니었다고 느꼈다. 가만히 있다간 나는 그저그런 소리나 지껄이는 놈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지금도 충분히 그렇게 된 것 같지만, 어쨌든 내가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하는 이상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언제가는 그렇게 될 것, 지금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직 나는 내적으로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오는 틀을 내재화하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내적으로 성숙하지 않았으니, 외부로부터의 틀을 최대한 멀리하자. 바꿔 말하면, 일단 살을 빼고 슬림한 옷을 입자는 것이다. 내 주변인들도 이미 느끼고 있으리라. 다만, 필수적으로 내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상황에서는 언제나 움직이겠다. 다만, 내 주변인들이나 나나, 지금보다 훨씬 더 깊은 내적 방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억지로라도 그렇게 만들어야, 외부에 흔들리지 않는 자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노력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즉, 우리는 우리의 아름다운 음악을 위하여 너를, 우리의 외부를 죽여야만 한다.


<참고>
강정, 「아름다운 적」(『처형극장』(1996))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