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실패로 끝난 첫 연애[2-4] love affair

고2 때였을 것이다. 당시 내신에 포함되는 듣기평가는 도내에서 공통적으로 치르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경상남도 학생들은 거의 모두 같은 시간에 같은 문제의 듣기평가를 쳤다. 듣기평가의 비중이 아주 크진 않았지만, 내신에 포함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하는 친구들은 당연히 신경을 써서 풀었다. 내신에 포함되니까, 적어도 1년에 두 번은 치렀었을 것이다. 아마 고등학교 2학년 1학기에 듣기평가를 할 때였는데, 아침 10시에 시험을 치르고 나서 점심시간에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당시 휴대폰을 학교에서 소지하는 것은 장려되진 않았지만 그렇게 자유롭지도 않았다.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다만, 당시 모든 학생들은 제도보다는 선생들이라는 '인간' 그 자체를 무서워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막연한 공포감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랬기 때문에, 보통은 통화할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학교가 파하고 난 후에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그것은 연인 사이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날 따라 점심시간에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대뜸 그녀는 나에게 듣기평가에서 몇 점을 받았는지를 물어봤다. 만점은 20점이었는데, 나는 아주 우연히도 다 맞췄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아마 듣기평가에서 만점을 받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따로 공부한 적도 없었으니, 다 맞춘 것이 운이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게다가 쉬웠기 때문에 애매한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더 유리했음이 분명했다.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만점을 받았다고 말하자, 그녀는 장난스레 낙담의 표현을 했다. 그녀 자신도 그 시험에서 생애 최고의 듣기평가 점수를 받은 듯 했다. 두어 개 정도 틀렸다고 말했던 것 같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좀 이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녀와 그런 측면에서의 경쟁은 단 1%도 신경쓰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 우리가 연애를 시작했을 때부터 사귄 기간 중 대부분은 그녀의 성적이 더 좋았었을 것이다. 내가 성적이 올랐던 건 고등학교 3학년 1학기가 지나면서부터 였으니까. 

그렇다면 이렇듯 내가 크게 고려하지 않고 있었던 소재에 대해 내가 벌써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고 내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결코 해결되지 않은 보편적인 의문이 있다(아마 이 물음은 내가 죽을 날까지 해결되지 않으리라). 사실상 신경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자본주의 사회라면 어떤 직업에 대한 신성함이 돈으로만 증명되어야 하는 것처럼, 상위권 대학 진학만을 목표로 하는 고등학생이라면 성적에 대해서는 연인 관계라도 (환경에 의해서) 신경쓰는게 당연하다고 본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역시 그 간극에 대해 참 이상함을 느꼈던 것 같다. 

고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넘어가면서, 그녀는 자신의 성적과 더불어 나의 성적을 신경쓰기 시작했다. 뭐 그녀와 내가 사귀기 시작할 때부터 내가 그녀보다 성적이 낮았으니 그녀가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면 또 전혀 이상한 것을 못 느꼈을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성적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는 데에 있었다. 우리가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녀는 나에 대해 무식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다. 실제로 무식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성적이 낮았던 이상 그것을 반박할 핑계조차 없었는데도 이상하게도 그녀를 비롯하여 내 주변 친구들은 내가 무식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반에서 하위권에 있는 내신 성적에 비해 모의고사 성적이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뛰어났기 때문이었을까?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당시엔 모의고사를 이상하게 잘 치는 애들을 향해 '쟤는 머리가 좋나봐'라고 생각하는 풍조가 있었던 것도 같다. 해서, 모의고사를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잘 쳤던 나는 머리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곤 했었다. 

고3이 되자, 그녀는 점점 더 벌어지는 자신과 나의 성적 차이에 대해 투덜대곤 했다. 즉, 내가 이렇게 계속해서 성적이 오르고 있지만(그것도 가파르게), 자신의 성적은 그렇지 못하다며, 이 추세에 의하면 나는 인서울을 성공할 것이고, 자신은 어려울 것 같은데,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이며, 또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걱정이었던 것이다. 항상 하던대로 나는 그녀에게 그런 건 그 때 가서 생각하라고 했지만, 별 생각이 없었다. 나는 그 때까지도 그런 것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과 통찰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성적이 올라간다는게 신기하고 즐거웠을 뿐... 

고등학교 3학년 때에도 그녀와 나는 자주 만났다. 고3이라고 해서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고3이 되자 그녀는 미술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고3 때부터 미술을 시작해서 미술로 대학을 가려고 한 것이다. (옷 입는 센스가 좀 있었던 그녀는 후에 결국 대구에 있는 계X대학교 패션디자인과에 진학하게 된다.) 그것에 대해서도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신기할 정도로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고3이라는 것에 대해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는 듯 했지만, 나는 아무런 스트레스도 받지 않았다. 공부량이 좀 늘었었지만, 그렇다고 죽을 정도로 늘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주 조금 하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미술학원의 공기 때문에 피부가 더러워졌다며 속상해 했다. 나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학교 수업이 파하면 저녁부터 그녀는 미술학원에 나갔다. 그리고 아주 늦게 마쳤다. 전혀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럴 수 밖에 없다면 그런 거지, 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녀는 나를 자주 만나지 못하는 것보다 자신의 피부가 상했다는 것 때문에 예체능계 고3의 생활을 힘들어하는 듯 했다. 

그녀의 미술학원에는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애가 한 명 있었는데, 어느 날 그녀는 그 친구에게 나에 대해 물어봤더랬다. 그 친구는 나에 대해 평하기를, '아, 그 맨날 축구만 하는 애?'라고 했다. 정답이었다. 나는 고3 때도 자주 농구와 축구를 했다. 

쓰라린 기억들도 있다. 나는 그 당시 그에게 섹슈얼한 것들을 너무 많이 요구했다. 넘쳐나는 욕구를 참지 못했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필시 그런 일에서의 가장 큰 쾌감을 얻는 방법은 상대방과 마음이 완벽히 일치될 때 일어나는 것인데, 지금도 마찬가지로 생각하지만 그녀 역시 보수적인 여성이었다. 그 때는 그것을 비난했지만, 그리고 지금도 좀 그런 편이긴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혹은 있었을까 싶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된 것이 내가 나이가 들면서 내 욕구가 한참 준 것이 어쩌면 가장 큰 원인일지도 모르겠다(실제로 줄었다). 아직도 이런 것에 대해 생각을 하면 그저 미안하기만 하고, 이 미안함은 이후에 내가 만나게 되었던 그녀들에게 역시 마찬가지다.

덧글

  • Guramssu 2012/05/11 11:52 # 답글

    그녀와 나는 섹스를 하진 않았다. 첫 키스를 한 후, 나는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그녀가 살던 동네 모처의 초등학교에서 처음으로 그녀의 가슴을 만졌다. 그녀의 가슴은 컸다. 그리고 그녀의 '그곳에' 처음 손을 댄 것은 반 년 정도는 더 지난 시점이었다. 나는 여름에는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두르는 척하면서 민소매 탑을 입고 있던 그녀의 가슴을 만지면서 걸었었다. 그녀의 가슴은 아주 이뻤다. 그리고 그녀의 그곳에 손을 댄 뒤, 그녀의 친구였던 이X영의 집에서 술을 마신 후 처음으로 오럴섹스를 했다. 그녀의 입에 내 것이 들어가자 마자 나는 사정했다. 그녀는 그것을 다 삼켰다. 그리고 그녀의 집에서, 그리고 우리의 집에서 우리는 그런 행위들을 많이 했다. 그녀의 처녀막은 내 손가락에 의해 찢어졌던 것 같다. 그녀는 내 것을 입으로 해줄 때마다 그것을 삼켰다. 맛은 참 이상하다고 했지만, 바로 삼키면 그런대로 할 만하다고 했다. 나는 턱이 아플 때까지 그녀의 그곳에 입을 대고 핥곤 했다. 그리고 한 번은 고3 설날인가 추석 때쯤 그녀가 살던 동네 모처의 중학교의 으슥한 곳에서 오럴을 하다가 그녀의 얼굴에 사정해버렸다. 그녀가 입고 있던 그녀의 동생의 바람막이는 조금 더러워졌고, 그녀와 나는 근처에 있던 수돗가에서 씻었다.
  • Guramssu 2012/05/11 11:54 # 답글

    그녀는 '섹스는 안돼'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만약 내가 보다 강하게 요구했었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남을 강제하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굳이 안 하겠다는 애를 억지로 구슬려 일을 치르긴 싫었다. 게다가, 어차피 오럴섹스로도 만족은 되었다(오히려 더 편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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