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실패로 끝난 첫 연애[2-3] love affair

앞서 '실패로 끝난 첫 연애[2]'에서 언급했던 100일 기념 선물이 뭔지 알아냈다. 착각하고 있었던 그 '러브장'은 그녀가 1년째 기념일 때 준 것이었고, 100일 때 그녀는 나에게 그녀 친구들의 축하 엽서 모음집과 십자수로 만든 쿠션을 줬었다는게 확인되었다. 오랜만에 읽어보니 그 때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사실-인과 관계가 적시되어 있는 것들도 많고... 좋다, 텍스트의 힘이란.

그녀와 내가 사귄 후 처음 봤던 영화는 원빈과 신현준 등이 나왔던 <킬러들의 수다>였다. 사귄지 한 달도 안됐을 때였던 것 같은데(아, 그녀와 내가 사귀기 시작한 날은 2001년 9월16일이다), 내가 보여주려고 했던 영화를 그녀는 더치페이 혹은 내꺼까지 부담하려고 했던 것 같다. 지금 읽어보니, 그 땐 우리 관계가 어색해서 그냥 마음 놓고 얻어만 먹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100일 때는 뭘 했는지 잘 모르겠는데, 아마 <이것이 법이다>라는 영화를 봤던 것 같다. 영화를 보자마자 말했겠지만(아니, 그 시절에 나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그녀는 그 영화가 참 재미없다고 했었다. <킬러들의 수다>는 오래 전에 망했었던, 용X동 정X상가의 그 안 좋은 극장에서 봤었고, <이것이 법이다>는 C동에서 봤던 듯...

에고, 글이 조직이 안되네. 어쨌든 그렇게 100일까지 잘 사귀다가, 우리의 '세븐틴'은 끝나고 '낭랑18세'가 시작되었다. 시작되자 마자, 나는 솔직히 연애를 해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좋은 점도 분명 있었지만, 그냥 귀찮았다고 할까. 겨울방학 동안 그녀와 나는 종종 만났고, 겨울방학이 끝날 때쯤, 그러니까 2월쯤에, 나는 그녀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핑계는 '공부에 열중하기 위해서'였지만, 사실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녀가 싫어진 건 아니었고, 다만 아주 많은 것들이 귀찮았을 뿐이었다.

그녀에게 헤어지자고 말한 장소는 상X동 아래쪽, 그러니까 지금 한X음병원 아래쪽 작은 공원, 나는 그네였는지 의자였는지 하여튼 거기에 앉아서 그녀에게 헤어지자고 말하고, 핑계를 대고,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100미터쯤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봤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울고 있었다. 그래도 그냥 앞으로 계속해서 갔고,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했던 것 같다.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은, 솔직히 들지 않았다. 그만할 땐 그녀의 마음의 상태를 가늠할 만한 감수성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해가 안 되었던 거다.

그렇게 헤어지고, 난 아무렇지도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개학을 했고, 개학을 할 때쯤 그녀의 친구였던 류X린에게 연락이 왔다. 헤어진지 10~20일쯤 됐을 때였을 게다. 그녀는 나에게 조X진이 한 달째 학교에 와서 엎드려서 울고만 있으니, 어떻게 좀 해보라는 것이었다.

솔직히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슬퍼하는게 이해되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이, 그 시절의 나는 그런 걸 고려할만한 감수성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며칠 뒤에 그녀에게 연락을 했다. 만나자고. 만나서 이야기했다. 다시 사귀자고. 그녀는 여러 가지 반문했지만, 내가 그녀에게 다시 사귀자고 해서 좋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좋게 생각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녀와 난 다시 사귀게 되었다. 그 후로, 그녀에겐 분명 내가 그녀에게 이별을 고했던 그 경험이 꽤 무서운 경험으로 각인되었었던 것 같다. 굳이 나에게 따지고 들진 않았었지만, 그녀의 마음 속에 그에 관한 불안이랄까, 상처랄까, 그런 게 느껴졌던 적이 종종 있었다.

아, 그리고 그 전에, 2001년 가을, 그녀가 다니던 고등학교 축제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그 때 그녀가 매우 피곤하다고 했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근처에서 그녀와 그녀의 친구가 지켜보는 가운데 농구를 했지만, 신경이 쓰였는지 평소만큼의 실력이 안 나왔다. 땀도 많이 흘렸었고...

그녀와 사귀고 말고가 사실 중요하게 생각되진 않았다. 그래서 헤어지자고 말하는 것도 쉬웠고, 다시 만나자고 말하는 것도 쉬웠다. 좀 싸이코패스 같은데, 항변하자면 그건 단지 감수성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정신질환이 아니라.

그렇게 그녀와 다시 사귀게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 그녀는 부쩍 집에서 압박을 받는 듯했다. 원래 공부를 잘하던 친구는 아니었지만, 중간 정도는 했던 것 같은데, 역시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가 공부를 잘하길 바랬다. 과외도 시키고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투정을 받아주었지만, 답답할 때도 있었다. '왜 부모 말에 그렇게 신경을 쓰지?'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부모의 말에 신경을 안 쓰는 내가 이상한 녀석이었다. 당연하지. 게다가 여자애였는데.

2학년 1학기 때도 역시 예전과 마찬가지로 데이트했다. 나는 항상 고2 시절을 인생의 3대 황금기 중 하나로 꼽는데, 사실 연애에 있어서 황금기는 아니었다. 그것보단 고2 때 난 친구들과 너무도 재미있게 놀았다. 1학년에 이어 2학년 때도 같은 반이 된 이X충과 나는 배X일, 황X환 등을 규합해 정말 재미나게도 놀았다. 여자친구와는 별개로 말이다. 그래도 뭐 연애와 관련된 다른 에피소드들도 많지만, 그 에피소드들이 대개는 뭐... 좀 그런 거라서 여기서 밝히긴 그렇다. (내가 너무 몸을 사리나?)

200일 때쯤이었는지, 300일 때쯤이었는지. 나는 그녀를 위해 이벤트를 해주기로 결심했다. 뭐 거창한 이벤트는 아니었다. 택배 기사처럼 위장해 그녀의 학교에 찾아가 그녀에게 케이크와 꽃다발을 사줬다. 전혀 어렵지 않았다... 그녀의 친구였던 류X린이 많이 도와줬다. 그녀의 친구 중 나와는 좀 가까운 편에 속했던 류X린은, 정작 본인에겐 굉장히 의외겠지만, 내가 인간들을 좀더 폭넓고 깊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든 사람들 중에 한 명이다. 쉽게 단정지을 수 없다고 할까, 특히 여자들에 관해서 말이다. 그걸 알게 해주었다. 좋은 의미로...

그녀가 그 이벤트에 대해 크게 감동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그녀는 고마워하는 것 같긴 했다.

아, 2002년이 될 때쯤, 그녀는 머리를 짧게 잘랐다. 완전 숏커트로. 키 작은 '남자' 중학생 같았다. 여자애 같은 남자애. 그나마 그녀가 몸매가 좋고 얼굴이 작아서 봐줄 만했지... 그치만 역시 짧은 머리는 별로였다.

그녀의 생일이 언제였더라, 난 그녀에게 빨간 장지갑을 사줬다. 그녀는 아주 마음에 들어했다. 물론, 생일선물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리고 앞서 말한 그 200일 때, 아마도 그녀는 커플티를 샀었다. 여름에 입는 연두색 니트였는데, 맨살에 입으려니 까끌까끌하고 사이즈도 나한테 좀 작아서 완전 별로였다. 그치만 그녀의 강권으로 몇 번 입고 나갔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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