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당신의 앞길에 축복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love affair

<<정영진-최욱의 불금쇼>>를 정주행하다가, 익히 알려진 최욱의 전 썸녀들과의 인터뷰 편을 보았다. 인상적인 편이었다는 청취자들이 많았다고 해서 조금 더 집중해서 들었지만, 방송이 끝날 때까지 딱히 인상적이라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마지막에 최욱 본인마저 '내가 어떤 여자를 이렇게 좋아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는 분이 나왔는데, 그것도 그냥 그랬다. 하지만 반전은 인터뷰가 끝난 뒤 있었으니... (스포일러 생략)

살면서 최 씨의 저 표현만큼 어떤 누군가를 사랑했던 적은 없다. 첫사랑에겐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딱히 의미를 둘 정도로 내 자신의 품성이나 지식이나 어떤 사회성이 발달하진 못했던 것 같다. "어제 장난감을 준 이조차 다음날이면 잊어버리는" 아이들처럼, 그 시절은 그런 수준으로 보냈던 것 같다. 그러다 1~2년 뒤 다른 여자애와 사귀게 되었고, 그게 내 첫 연애가 되었다.

그 후 몇 번의 연애를 했지만,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첫사랑을 할 때처럼 가슴이 떨리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다. 한번은 그렇게 위장한 적도 있었는데, 결과적으론 여러가지 이유로 잘 되지 않았다.

"그 때의 난 네 첫키스에 축하하지 못했지."

내가 잘못해서 헤어진 경우가 대부분이고, 게다가 위에 언급한 저 최 씨와 비슷한 케이스도 아니니, 내가 나의 예전 연인들에게 무엇인가 말을 하는 것은 좀 어이없는 일일 것이다. 이제와서 뭔... 물론 그렇게 안 좋게 헤어진 적도 없겠지만, 이건 내 생각만일지도 모르는 일이고...

헤어진 전 연인들 중에서 한두 번씩 마주치는 애가 있다. 그녀와는 내가 경험한 연애 중 두 번째로 길게 사귀었고, 사귈 때도 재미있었으며, 헤어질 때도 나름 쿨학 헤어졌던 것 같다. 나도 군대를 가야할 시기였기 때문에 쿨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있고...

그렇게 그녀를 마주치게될 때면 서로 가볍게 인사하는 편이다. 그녀와 헤어질 때 생각했던 것은 뭐 조금은 다르지만 그런 식으로 가볍게 인사하고 가끔씩 지난 날을 추억하며 그런 기억으로 남는 것이었지만, 그래서 더욱 더 씁쓸하다는 것이다.

차라리 더 강력하게 부딪혔어야 한다. 그녀와의 관계에 대해서 말이다. 덜 쿨했어야 하고, 미래를 덜 생각했어야 했다. 짜증나는 현실(입대나 해외연수 등) 위에서 파도치면서 속이 썪을 대로 썩으면서 그렇게 사귀었어야 했다. 시간이 흘러 다시 마주쳐도 가볍게 인사하는 사이, 이런 사이는 현재의 연애에서 보면 가장 가치없는 사이일지도 모른다. 가볍게 인사를 왜 하나, 어차피 다 지나가버렸는데. 어차피 다 지나가버렸으니, 어차피 사귈 거 빡세게 사귀었어야 한다. 더욱더 깨질 각오를 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관계였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흘러 모든 것이 나름대로 평평해졌을 때, 그 때 그녀의 행복을 축하하는 마음이 아마 저 최 씨의 마음과 비슷할 수 있을 것이다.

30대 중반이다. 아마 앞으로도 가슴 떨리게 할 사람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직진을 해야한다. 일단 정해지면 쿨하게 가지 말자. 너무 미래를 생각하지 말자. 삶을 다 아는 듯이 사람을 대하지 말자. 여전히 늦지 않았다.

life trifles

나는 남들보다는 꿈을 잘 기억하는 편인 것 같다. 일상에 특이한 점이 없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내가 꾸는 꿈들은 뭔가 좀 기괴한 것이 있는데, 기괴한 거야 꿈이니까 누구나 그럴 수도 있는 것이지만, 나는 그걸 어느 정도까지는 기억한다는 데 차이점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예컨대 오늘 낮에 꾼 꿈은 이랬다. 내가 살고 있는 고시원은 실제로 3층짜리 건물이고 나는 1층 창가에 거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꿈에선 복도식의 2~3층쯤 햇볕이 안 드는 곳이었다. (꿈 속에서) 오후 5시경, 복도를 지나가던 어머니가 내 방에 들렀고, 내 방은 실제와는 다르게 온갖 쓰레기들로 가득했다. 곳곳에 널린 쓰레기 봉투...

내가 그렇게 산 적도 없고 설사 그랬다고 하더라도 부모님은 크게 책망하지 않으셨을 것이고, 꿈 속에서도 역시 그랬다. 하지만 만약 실제로 그런 상황이었다면 나는 어딘가 부끄러웠을 것이고, 그 꿈 속에서도 좀 부끄러웠던 것 같다. 역시 어머니와 나는 그 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토익 시험 결과 발표와 관련된 장면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오늘이 12일에 친 토익 시험 결과가 발표되는 날이었다. 어쨌든, (꿈 속에서)  내 방 화장실에서 스마트폰으로 그 결과를 확인하는데, 공교롭게도 그 시험을 친 관련자들은 어떤 점수로 그것을 판단하기보단 '합격했어요' 혹은 '불합격이네요'로 판단하고 있었다. 독자들도 알다시피, 토익 시험 자체는 어떤 합격/불합격을 나누는 시험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낮잠에서 깬 직후 실제로 토익 점수를 확인하였기 때문에 기억에 혼선이 있다. 그 꿈 속에서 나는 내 결과를 어떻게 판단했더라...? 꿈 속에서 나의 점수는 900점이 훨씬 넘는 점수를 받았던 것까지는 기억이 난다. 꿈 속에서의 그 사람들은 그 시험 결과를 합격과 불합격으로 판단하고 있었지만, 역시 같은 꿈 속에서의 나는 현실처럼 점수로 판단했던 것이다. 아무튼, 나는 이렇게 꿈을 기억을 하곤 한다.

며칠 전 꿈은 몇 년 전 죽은 한순이에 대한 꿈이었다. 나는 그 꿈 속에서 한순이를 묻었던 그 산 능선으로, 그 꿈 속에선 아직은 살아있던, 하지만 곧 병사 할 한순이를 데리고 갔다. 과거 사실대로라면 그녀는 죽은 다음에 거기에 가서 묻혔는데, 그 꿈 속에선 살아있는 채로 간 것이다.

실제로 그 능선엔 나무들이 빼곡했고 돌들이 많았고, 꿈 속에서도 그랬다. 나는 어느 지점에 한순이를 배치했고, 거기로부터 10미터쯤 위에 있는 큰 바위 뒤엔 뜬금없게도 북극곰이 어떤 먹이를 먹으면서 이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갈등이 되었다. 아니, 갈등 이전에, 저기 무서운 북극곰이 있으니, 한순이를 데리고 일단은 다른 곳으로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때, 동행자(내 가족 중 누군가였던 것 같다)였는지 아니면 한순이 자신이었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누군가가 한순이는 그 북극곰에서 잡아 먹히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니, 그대로 놔두고 가는 게 옳다는 반응을 보였다. 적어도 한순이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는 태도를 보이긴 했다. 그래서 나는 한순이를 그대로 놔두고 능선을 내려왔고, 꿈은 끝났다.

실제로 한순이는 죽기 며칠 전 집을 나갔었다. 한순이가 살던 본가는 시골 아파트 10층인데, 그렇게 늙고 병든 애가 홀로 계단을 내려가 밖으로 나가버린 것이다. 정수기 수리 문제로 어머니가 현관문을 열어두었을 때였다.

수소문 끝에 보호소에서 데려왔고, 그 후 며칠 뒤부터 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했고, 2~3일 버티다가 죽었다. 죽기 전날 밤부터 몸을 가누지 못해 누워서 소변을 싸서 몸이 더러워졌고, 나는 그런 그녀를 물티슈로 닦아주었다. 그리고 내 방에서 재웠다. 밤새 고통스러워했지만, 내가 그녀를 만져주면 조용해졌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다시 거실로 옮겨졌고, 햇볕을 받으며 한동안 누워있다가 의식을 잃었지만, 마지막 기력은 아껴두고 있었는지 마지막으로 나와 작은누나를 분명하게 본 뒤 말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나와 아버지는 평소 대충이나마 봐두었던 어떤 산의 능선에 땅을 파고 그녀를 묻어주었다. 한순이의 마지막 길, 퉁명스러웠던 나의 아버지도 그녀의 마지막에 애도를 표했다.

나 역시 한순이에게...

그동안 함께해서... 18년동안 우리와 함께해줘서...

나는 이 뒤를 이을 수 있을 만한 표현을 죽을 때까지 확정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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